제 9 과 형제요 전우들이여
본문 : 빌립보서 2:16-30
요절 :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5절)
첫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삶입니다.
그는 무슨 결정을 내리든 항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로마감옥에 갇힌 바울의 고통의 삶이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감옥이 그의 삶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네로의 죄수였지만 실제적으로 자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이처럼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고 그 뜻에 순복하고 그 뜻에 매여 살며 통제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통했고, 그래서 그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떠나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상관없이 혼자 결정 내릴 위험이 있습니다. 인생의 많은 일들을 단순히 상식과 거짓된 자기 마음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쉽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연적이고 인간적입니다.
26절에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의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가 향수병에 걸려 친구와 친지들이 있는 빌립보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고 말합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다 잃어야만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굉장한 기적을 행했지만 정작 에바브로디도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어떤 병이든 믿기만 하면 고침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오도그릇된 길로 이끎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를 고치고 누구를 고치지 않을지 결정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분은 때로 죽음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치유 받지 못했거나 병 걸려 죽었다고 그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삶을 25절에 ‘형제요’ 라고 했습니다.
가족관계는 기계적으로 ‘형제’라는 호칭만 하는 것이 아닌 형제의 사랑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에게 보내 감옥에 있는 동안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25절 ‘함께 수고한 자’ 라고 했습니다. ‘동역자’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함께 수고하는 자들입니다. 교회는 신앙 경륜이 오래고, 시간이 있고, 더군다나 걱정이 없는 사람만 일하는 무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수고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25절 ‘함께 군사된 자’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과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교리를 순전하게 지키기 위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바울은 필요하면 죽을 각오까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디모데도 자기를 돌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했고,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다가 거의 죽기에 이르렀지만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제 9 과 형제요 전우들이여
본문 : 빌립보서 2:16-30
요절 :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5절)
첫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삶입니다.
그는 무슨 결정을 내리든 항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생각했습니다. 로마감옥에 갇힌 바울의 고통의 삶이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감옥이 그의 삶을 통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고 그 뜻에 순복하고 그 뜻에 매여 살며 통제 받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통했고, 그래서 그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떠나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상관없이 혼자 결정 내릴 위험이 있습니다. 인생의 많은 일들을 단순히 상식과 거짓된 자기 ⎕⎕ㅁㅇ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쉽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연적이고 인간적입니다.
26절에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정도의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그가 향수병에 걸려 친구와 친지들이 있는 빌립보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고 말합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을 다 잃어야만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굉장한 기적을 행했지만 정작 에바브로디도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어떤 병이든 믿기만 하면 고침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오도그릇된 길로 이끎해서는 안됩니다. 누구를 고치고 누구를 고치지 않을지 결정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분은 때로 죽음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치유 받지 못했거나 병 걸려 죽었다고 그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말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의 삶을 25절에 ‘형제요’ 라고 했습니다.
가족관계는 기계적으로 ‘형제’라는 호칭만 하는 것이 아닌 형제의 사랑을 ⎕⎕ㅎㄷ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에게 보내 감옥에 있는 동안 시중을 들게 했습니다.
25절 ‘함께 수고한 자’ 라고 했습니다. ‘동역자’라고 번역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함께 수고하는 자들입니다. 교회는 신앙 경륜이 오래고, 시간이 있고, 더군다나 걱정이 없는 사람만 일하는 무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수고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25절 ‘함께 군사된 자’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과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교리를 순전하게 지키기 위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워야 합니다.
바울은 필요하면 죽을 각오까지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디모데도 자기를 돌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했고, 에바브로디도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다가 거의 죽기에 이르렀지만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