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과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
본문 : 빌립보서 2:14-16
요절 :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16절)
-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에 대해 설명할 때, 16절에서 “생명의 말씀을 밝혀”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위험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도 깨우쳐서 도움과 교훈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밝히지 않으면 말씀은 무지와 어둠 속에 묻혀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일시적인 움직임과 행실지속적인 인격이 바로 이 일, 즉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일과 직결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흠 없고 순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생명의 말씀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본질상 적극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단순히 그른 일만 책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옳은 일까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천성적 성품이 아니라 ‘복음이 없다면 저렇게 하지 못했다’인상을 주어야 합니다.
오직 복음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유일한 설명이며, 모든 행동의 합당한 동기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흠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 우리의 말뿐 아니라 모습으로 세상의 빛들로 나타나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생명이 있는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고착된 모습이 없어야 하며, 기계적인 데나 형식적인 데가 없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16 ‘생명의 말씀’ 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생명의 말씀,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능력이 넘치는 말씀, 강력한 말씀, 움직이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부는 것은 생명에 대해 알려 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우리가 죽어 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업이나 직장일 가정일로 영적인 것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지만 독생자 예수가 인간의 모든 한계를 안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구덩이 속까지 내려와 우리 죄를 지시고 우리를 속죄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을 허무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본성을 받고 그의 생명을 받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의 주된 문제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며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영적인 생명 없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왜 사모해야 합니까?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라고 싶다면 이 젖을 먹어야 합니다. 이 젖을 먹으면 몸이 자라고 성장합니다. 생명의 질이 높아집니다.
제 12 과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
본문 : 빌립보서 2:14-16
요절 :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16절)
-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에 대해 설명할 때, 16절에서 “생명의 말씀을 밝혀” 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위험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도 깨우쳐서 도움과 교훈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ㅂㅎ지 않으면 말씀은 무지와 어둠 속에 묻혀 버릴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일시적인 움직임과 행실지속적인 인격이 바로 이 일, 즉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일과 직결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흠 없고 순전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생명의 말씀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그른 일만 책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옳은 일까지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천성적 성품이 아니라 ‘⎕⎕ㅂㅇ이 없다면 저렇게 하지 못했다’인상을 주어야 합니다.
오직 복음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유일한 설명이며, 모든 행동의 합당한 동기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흠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 우리의 말뿐 아니라 모습으로 세상의 빛들로 나타나야 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생명이 있는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고착된 모습이 없어야 하며, 기계적인 데나 형식적인 데가 없어야 합니다.
바울은 복음을 16 ‘⎕⎕ㅅㅁ의 말씀’ 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생명의 말씀, 역사하는 말씀입니다. 능력이 넘치는 말씀, 강력한 말씀, 움직이는 말씀입니다.
복음은 생명에 대해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우리가 죽어 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업이나 직장일 가정일로 영적인 것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지만 독생자 예수가 인간의 모든 한계를 안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뿐 아니라 구덩이 속까지 내려와 우리 죄를 지시고 우리를 속죄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을 허무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본성을 받고 그의 생명을 받습니다.
우리의 임무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의 주된 문제임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며 그들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영적인 생명 없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 22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왜 사모해야 합니까?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라고 싶다면 이 젖을 먹어야 합니다. 이 젖을 먹으면 몸이 자라고 성장합니다. 생명의 질이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