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면류관 벗어서’ 25장(통2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계시록 4장 1∼17절

말씀 :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인 주후 90년경에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많이 지쳐 있을 때였습니다. 로마제국의 네로황제로부터 이어진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는 황제가 바뀌어도 수십 년 동안 계속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잘못되신 것은 아닌지 도대체 다시 오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핍박은 끝이 없고, 예수님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캄캄한 상황이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적인 피로감을 쌓이게 했을 것입니다. 그때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런 형편에 놓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를 주고 새로운 소망을 품게 해서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4장은 승천하신 이후에 하늘 보좌 위에 앉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실망과 낙심에 빠져 있던 성도들에게 큰 희망을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는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성도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후에 감동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그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그 보좌 앞에 드립니다. 면류관은 마땅히 성도가 받아야 할 상입니다. 그런데 힘들여서 상으로 받은 면류관을 벗어서 다시 주님께 드립니다.

밭을 갈고 양도 열심히 치는 종이 있습니다. 그 일을 다 하고 돌아와서 쉴새 없이 주인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주인이 먹을 동안에 띠를 띠고 수종을 듭니다.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인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주인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무익한 종’이라는 고백뿐입니다. 우리도 스스로 살아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17:28). 그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싸움을 할 수 있었고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었고 시험을 참고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잘나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셔서 내 마음을 감동시키고 나로 하여금 그 모든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장차 우리도 반드시 주님 앞에 설 때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시 벗어서 주님 앞에 드리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게 하신 것임을 확신하기에 그 면류관을 주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자기의 잘남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자랑하며 살길 원합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기도 : 하나님, 무익한 종임을 잊지 않고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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