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과 계시의 은혜
본문 : 히브리서 1:1-3
요절 :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5:12)
저자는 진정한 격려를 위해서, 먼저 저들의 상황과 상태를 조사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청중들에게 한가지 중요한 책망을 하는데, 그것은 모든 문제들이 궁극적으로 기독교 복음의 위대성과 독특성을 깨닫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낙심의 죄를 범하고 있다면 결국, 원인은 복음의 위대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불평하고, 희망을 잃고, 하나님을 의심하기까지 하는 것이 이런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독특성을 본문의 주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복음은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시작합니다. 복음을 누구에게, 어디에서 배웁니까? 정답은 바로 하나님에서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계시라고 부릅니다. 계시란, 하나님은 누구시며,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을 알게 하시려는데 있습니다.
첫째, 계시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기독교만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유일한 종교가 아닙니다. 다른 종교와 심리학에서조차 사람들은 행복해 합니다. 종교를 단지 우리를 선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거나, 고상한 개념이나 관점을 배우는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종교의 첫째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선한 사람인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나의 행복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행복하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와 상황을 외면하려 약에 취한 사람이 느끼는 행복과 마찬가지입니다.
둘째,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으며, 다시말해 인간은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계시’라는 말 자체가 ,이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일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계시는 불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나 그에 반해 인간은 범죄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오직 계시만이 참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성경에 자신에 대해 계시하기를 기뻐하셔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연구할 수 있고, 금식할 수 있고, 기도할 수 있고, 선행할 수 있지만, 그러나 결코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계시하신 것에 국한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재미있게 배울 것인가, 새로운 것을 배울것인가라는 시도보다, 어떻게 성경을 성경답게 성실히 배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넷째, 계시된 것은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를 주셨음은, 충분하다는 것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더 많이 알고 싶어 합니다.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그러나 계시는 우리가 알도록 허용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과, 알 필요가 없는 것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신 2929).
다섯째, 계시가 주어졌다는 것은 오직 은혜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권리를 박탈 당하고 그 지위에서 전혀 가망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의롭게도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하나님과 화해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제 51 과 계시의 은혜
본문 : 히브리서 1:1-3
요절 :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5:12)
히브리서 교인들은 모든 문제들이 궁극적으로 기독교 ⎕⎕ㅂㅇ의 위대성과 독특성을 깨닫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현재 낙심의 죄, 불평하고, 희망을 잃고, 하나님을 의심하기까지 하는 것이 이런 문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의 독특성을 본문의 주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복음은 언제나 ⎕⎕⎕ㅎㄴㄴ에게서 시작합니다. 복음을 누구에게, 어디에서 배웁니까? 그래서 복음을 ⎕⎕ㄱㅅ라고 부릅니다. 계시란, 하나님은 누구시며,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화해을 알게 하시려는데 있습니다.
첫째, 계시의 궁극적인 목적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ㅇㄱ 하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다른 종교와 심리학에서조차 사람들은 행복해 합니다. 종교를 단지 우리를 선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거나, 고상한 개념이나 관점을 배우는 정도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종교의 첫째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선한 사람인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ㅇㄴ 사람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만일 나의 행복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다면, 행복하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인간은 전적으로 ⎕⎕ㅁㄴ합니다.
‘계시’라는 말 자체가 ,이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만일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계시는 불필요하고,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나 그에 반해 인간은 범죄한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오직 계시만이 ⎕ㅊ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은, 성경에 자신에 대해 계시하기를 기뻐하셔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계시하신 것에 국한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재미있게 배울 것인가, 새로운 것을 배울것인가라는 시도보다, 어떻게 성경을 성경답게 성실히 배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넷째, 계시된 것은 ⎕⎕ㅊㅂ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를 주셨음은, 충분하다는 것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며 더 많이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계시는 우리가 알도록 허용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과, 알 필요가 없는 것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신 2929).
다섯째, 계시가 주어졌다는 것은 오직 ⎕⎕ㅇㅎ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권리를 박탈 당하고 그 지위에서 전혀 가망 없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