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과 남자답게 강건하라
본문 : 고린도전서 16:13-14
요절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3절)
우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말씀은 그 다음에 옵니다. 사도의 생각에는, 이러한 순서로 말하게 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어려움 중에 용기의 호소로 간주할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은 용기와 힘과 굳셈과 인내를 가장 중요하다라고 역설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최고의 덕목은 용기가 아니라 겸손입니다. 헬라인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러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최종적 실패된 죽음, 자기를 보호하지 못하는 나약함, 십자가의 비참함이 너무나 나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마음은 곧,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스스로 영광을 벗어 버리고, 자기를 낮추며, 종의 형체를 취하여 죽음과 수치에 이르기까지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강하고 씩씩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오직 그것이 진리와 관련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는 먼저 “믿음에 굳게 서라” 는 말씀을 듣고 난 후에야 “남자답게 강하라” 는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남자답게 강건할 수 있습니까?”
첫째, 어린아이가 되지 않음으로써 강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네 편 내 편을 구분하고, 상대를 비난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 먹는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 뜻대로 설명되지 않자, 불평했습니다. 은사에 대한 바른 정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자기가 받은 은사에 대해, 받지 못한 자들은 알지 못한다며, 그들을 오히려 어리석은 자 취급했습니다. 지식 있는 자들은 그 지식을 자랑하며, 복음을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복음의 이해에 있어서 강해야 합니다.
뜨거워야 했기 때문에 말씀 사경회가 아니라, 은사 집회를 시도했고, 시원함을 주어야 했기 때문에, 연예인이나 코메디언 강의를 좋아했습니다. 처음에 머무르려는 위험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리스도이 처음 되었을 때 체험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신천지같은 사이비 이단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장성한 남자답게 신앙의 교리들과,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일관되고 신뢰할만하며 믿음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두드러진 특징은 쉽게 열광하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에 화들짝 놀라, 즉각적으로 믿음 없는 말, 행동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굳게 선다는 것은, 분명 굳게 서지 못하도록 방해가 있다는 다른 말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는 왜 ‘남자답게 강해야’합니까?
우리의 복음의 진리가 위대하고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자답게 당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현재의 위험한 상황 때문입니다. 원수를 강력하고 힘이 셉니다. 반면 교회는 작고 약합니다.
제 15 과 남자답게 강건하라
본문 : 고린도전서 16:13-14
요절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3절)
우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답게 ⎕⎕ㄱㄱ하라는 말씀은 그 다음에 옵니다. 사도의 생각에는, 이러한 순서로 말하게 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어려움 중에 용기의 호소로 간주할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교회 밖 사람들은 용기와 힘과 굳셈과 인내를 가장 중요하다라고 역설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최고의 덕목은 용기가 아니라 겸손입니다. 헬라인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패된 죽음, 자기를 보호하지 못하는 나약함, 십자가의 비참함이 나약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마음은 곧,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스스로 영광을 벗어 버리고, 자기를 낮추며, 종의 형체를 취하여 죽음과 수치에 이르기까지 복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강하고 씩씩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오직 그것이 진리와 관련 되었을 때입니다. 우리는 먼저 “믿음에 굳게 서라” 는 말씀을 듣고 난 후에야 “남자답게 강하라” 는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남자답게 강건할 수 있습니까?”
첫째, 어린아이가 되지 않음으로써 강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네 편 내 편을 구분하고, 상대를 비난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 먹는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 뜻대로 설명되지 않자, 불평했습니다. 은사에 대한 바른 정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식 있는 자들은 그 지식을 자랑하며, 복음을 배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ㄷㅌ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복음의 이해에 있어서 강해야 합니다.
뜨거워야 했기 때문에 말씀 사경회가 아니라, 은사 집회를 시도했고, 시원함을 주어야 했기 때문에, 연예인이나 코메디언 강의를 좋아했습니다. 처음에 머무르려는 위험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리스도이 처음 되었을 때 체험만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신천지같은 사이비 이단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장성한 남자답게 신앙의 교리들과, 영원한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ㅈㅅ에 있어서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 일관되고 신뢰할만하며 믿음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두드러진 특징은 쉽게 열광하지만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고 ⎕⎕ㅂㄷ스럽지 않은,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 없는 말, 행동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굳게 선다는 것은, 분명 굳게 서지 못하도록 방해가 있다는 다른 말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