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주 믿는 형제들’ 221장(통525)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에베소서 2장11~18절

말씀 : 바울은 자신을 예수님의 사도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실제 바울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혹은 음성으로 만난 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도로 부르신 목적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말이죠.

그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자마자 선교여행을 시작합니다. 그의 전도에는 거침이 없었고 모든 사람을 복음으로 초청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교회를 시끄럽게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 중심이었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지요. 거침없이 전도하는 바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사도들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합니다. 사도행전 15장에 회의 소집 정황과 결과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는데 결론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푸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장이던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공인하고 바울의 사역이 옳다는 걸 입증해 줬습니다. 이후 바울의 사역은 더욱 힘을 얻어 이방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거침없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바울이 세운 에베소교회에서 생긴 문제가 배경입니다. 유대 기독교인과 그 외 기독교인 그룹에서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무조건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음식 규례를 지켜야 하는지, 구약의 율법은 어떻게 준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었습니다.

보통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쪽이 승리합니다. 에베소교회도 그런 기류가 형성됐나 봅니다. 지도자로서 바울이 손쉽게 일을 처리하려면 이방 그리스도인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허무셨습니다”(14절)라며 화평을 강조합니다. 유대 기독교인이나 이방 기독교인이나 하나님이 똑같이 사랑하고 법조문으로 된 율법을 지키느냐 마느냐보다(15절) 그 사랑을 깨닫는 게 문제를 해결하는 본질로 본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차별이 없습니다. 둘이 한 성령 안에서 한 분이신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18절).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더욱 확실하게 선포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7).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는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기도 : 하나님, 초대교회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이 문화적 차이로 갈등을 겪었습니다. 우리들의 공동체 안에도 같은 문제가 존재함을 깨닫습니다.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보다 바울의 가르침대로 우리를 위해 자신의 육체로 막힌 담을 허무신 주님의 사랑과 화평으로 하나 됨을 추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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