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과 불신앙의 원인
본문 : 사도행전 4:1-7
요절 :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행 420)
유대 지도자들은 왜 이렇게 반응했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왜 여전히 이렇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첫째, 불신앙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 심지어 서로 적대적인 사람들까지 한데 묶습니다.
행 41,5-7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주일동안 성전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성전 맡은 자’는 성전 내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의 일을 맡은 자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은 근본적으로 정치인들로서, 책략과 음모에 능했습니다. 천사나 영과 같은 영적인 영역 자체를 아예 믿지 않는 유물론자들이었니다. ‘서기관’은 율법학자로, 이들은 부활과 천사와 심판과 상급과 형벌을 믿었고, 사두개파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야바와 안나스는 대제사장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던, 당시 상황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은 아주 상반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실제적이고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사람이었던 반면, 헬라인은 관념과 철학을 중시했습니다. 이런 이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일에는, 서로 뜻을 함께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자신이 지성인이어서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무식자들조차, 똑같이 기독교 신앙을 거부합니다.
둘째, 당국자들은 나사렛 예수의 죽으심에 관한, 베드로의 설교를 집중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수난과 모욕을 겪으며 자신의 죽음으로 구원을 성취했다’라고 하면, 말도 안되는 웃기는 소리로 여깁니다.
왜냐면, 메시야는 강력한 군사 지도자로 오실 거고, 강하고 능한 분으로, 화려한 왕국에서 태어나 예루살렘 왕의 자리에 앉으실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헬라인들은 세상의 구원은, 사상가, 철학자의 손에서 위대한 이론을 제시하는 인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구원자가 십자가에 죽는다는 것은, 유치한 환상으로 여깁니다.
행 222-23 “23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이 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구세주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계획이었습니다.
셋째, 당국자들은 십자가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났다는 말을 특히 듣기 싫어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고, 승천하심을 목격하고, 설교했습니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그 말에 격분해서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고,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의 존재의 영향력을 믿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문자 그대로 부활했다는 말에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을 불신자로 만듭니까?
그 대답은 전적으로, ‘마음과 영의 상태’ 때문입니다. 불신앙의 원인은 머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데 있습니다. 불신앙의 원인은 인격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감정의 영역에 있습니다.
4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싫어했다’는 말은 ‘심란해 했다, 몹시 괴로워 했다, 불쾌해 했다, 동요되었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감정의 영역입니다. 현대 불신자들은, 항상 자신의 감정을 드러냅니다.
현대인들은, 과학이 우주를 완전히 설명하고, 규정한 범위 한계 안에, 속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복음이 들어와서, 그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기적과 동정녀 탄생, 두 본질을 한 몸에 지닌 인간의 존재, 능력의 나타남, 부활, 승천을 이야기 합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말도 안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이 자신들같은 현대 지성인을, 바보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가르침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제 44 과 불신앙의 원인
본문 : 사도행전 4:1-7
요절 :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행 420)
유대 지도자들은 왜 이렇게 반응했습니까? 오늘날 사람들은 왜 여전히 이렇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첫째, 불신앙은 본질적으로 ⎕⎕ㄷㄹ 사람들, 심지어 서로 적대적인 사람들까지 한데 묶습니다.
행 41,5-7 ‘제사장’은 성전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성전 맡은 자’는 질서를 유지하는 경찰의 일을 맡았습니다. ‘사두개인’은 정치인들로서, 천사나 영과 같은 영적인 영역 자체를 아예 믿지 않는 유물론자들이었습니다. ‘서기관’은 율법학자로, 이들은 부활과 천사와 심판과 상급과 형벌을 믿었습니다.
바울 당시 상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인은 실제적이고 역사적이고 사실적인 사람이었던 반면, 헬라인은 관념과 철학을 중시했습니다. 이런 이들이, 복음을 거부하는 일에는, 서로 뜻을 함께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자신이 지성인이어서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무식자들조차, 똑같이 기독교 신앙을 거부합니다.
둘째, 당국자들은 나사렛 예수의 죽으심에 관한, 베드로의 설교를 집중적으로 반대했습니다.
⎕⎕ㅇㄷ인들은, 메시야가‘수난과 모욕을 겪으며 자신의 죽음으로 구원을 성취했다’라고 하면, 말도 안되는 웃기는 소리로 여깁니다.
왜냐면, 메시야는 강력한 군사 지도자로 오실 거고, 강하고 능한 분으로, 화려한 왕국에서 태어나 예루살렘 왕의 자리에 앉으실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ㅎㄹ인들은 세상의 구원은, 사상가, 철학자의 손에서 위대한 이론을 제시하는 인물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구원자가 십자가에 죽는다는 것은, 유치한 환상으로 여깁니다.
행 2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이 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이루어졌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구세주를 통한 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계획이었습니다.
셋째, 당국자들은 십자가에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났다는 말을 특히 듣기 싫어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성령을 불어넣어 주시고, 승천하심을 목격하고, 설교했습니다. 하지만 유대 지도자들은 그 말에 격분해서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고, 재판에 회부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의 존재의 영향력을 믿습니다. 하지만 예수가 문자 그대로 부활했다는 말에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젓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을 불신자로 만듭니까?
그 대답은 전적으로, ‘⎕⎕ㅁㅇ과 ⎕ㅇ의 상태’ 때문입니다. 불신앙의 원인은 머리에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깊은 데 있습니다. 불신앙의 원인은 인격의 중심부에 있습니다. 감정의 영역에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과학이 우주를 완전히 설명하고, 규정한 범위 한계 안에, 속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복음이 들어와서, 그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기적과 동정녀 탄생, 두 본질을 한 몸에 지닌 인간의 존재, 능력의 나타남, 부활, 승천을 이야기 합니다. 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말도 안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