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과 깨어 있으라
본문 : 고린도전서 16:13-14
요절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3절)
‘깨어 있으라’는 말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잠들지 마라’‘정신을 차리라’ 군대식으로 표현하면 ‘차렷’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구약식으로 표현하면 ‘나팔을 불라’ 정도일 것입니다. 부대의 취침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고, 무장하여 각자 자신의 정해진 위치로 갈 것을 명령하는 소리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에 빈번하게 반복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끊임없이 그 말씀이 꼭 필요한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싸움과 전쟁이고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전장에 있고, 교회는 전투에 전진 부대이며, 우리 모두는 전투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것은 신앙에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인격을 지닌 마귀를 믿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악의 능력도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삶과 존재에서 영적인 면에 대하여 개념을 흐리자, 필연적으로 영적인 싸움에 대한 개념도 놓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 또한, 영적 싸움과 전쟁으로서의 신앙 개념을 잃어버린 이유 중 하나는, 영적 싸움을 정죄하고, 모든 종류의 갈등은 끝난 것으로 간주해서, 긴장을 푸는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
- 나 자신에 대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로 인해서, 믿음에서 물러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낮아진 기준을 받아들려는 위험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의 힘과 능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 원수에 대해
원수를 경계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만 살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속에 어두운 마음과 생각을, 그저 내 생각이냥 따라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강력한 영적인 세력들과의 싸움입니다.
교회된 우리가 이 시대에 처한 가장 큰 위험은, 잘못된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도 그랬습니다. 끼리끼리 모이고, 회개하려 하지 않고, 교회의 덕에 대해 양보하지 않았고, 다양한 은사들을 가지고 자기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언제?
그 대답은 너무 단순하고 명백합니다. 항상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경계를 게을리 하다가 결국 일이 터지는 것입니다.
딤후 4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제 13 과 깨어 있으라
본문 : 고린도전서 16:13-14
요절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3절)
‘깨어 있으라’는 말은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잠들지 마라’‘정신을 차리라’ 군대식으로 표현하면 ‘차렷’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구약식으로 표현하면 ‘나팔을 불라’ 정도일 것입니다. 취침 시간이 끝났고, 무장하여 각자 위치로 갈 것을 명령하는 소리입니다. 이 말씀이 성경에 빈번하게 반복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말씀이 꼭 필요한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싸움과 ⎕⎕ㅈㅈ이고 전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전장에 있고, 교회는 전투에 전진 부대이며, 우리 모두는 전투 중이라는 사실을 망각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에서 초자연적인 것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인격을 지닌 마귀를 믿지 않고, 보이지 않는 악의 능력도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삶과 존재에서 영적인 면에 대하여 개념을 흐리자, 필연적으로 영적인 싸움에 대한 개념도 놓쳐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무엇에 대해?
- ⎕ㄴ에 대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로 인해서, 믿음에서 물러가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에 대해, 낮아진 기준을 받아들려는 위험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의 힘과 능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 원수에 대해
원수를 경계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신만 살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자기 속에 어두운 마음과 생각을, 그저 내 생각이냥 따라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싸움은 강력한 영적인 세력들과의 싸움입니다.
교회된 우리가 이 시대에 처한 가장 큰 위험은, 잘못된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도 그랬습니다. 끼리끼리 모이고, 회개하려 하지 않고, 교회의 덕에 대해 양보하지 않았고, 다양한 은사들을 가지고 자기자랑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언제?
그 대답은 너무 단순하고 명백합니다. ⎕⎕ㅎㅅ입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경계를 게을리 하다가 결국 일이 터지는 것입니다.
딤후 4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