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과 아버지의 기쁨의 표현
본문 : 누가복음 15:22-24
요절 :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2절)
주님은, 죄의 상태에서 오래 머물러, 불안 가운데 있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장 회개하고 통회하고, 당장 온전한 죄사함을 발견하고, 즉시 평안 속으로 들어가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감정을 초월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관심과 공감도 할 수 없는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 본성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격과 품성이 높고 빼어납니다. 그래서 그분의 기쁨의 표현 방식은, 가장 높습니다.
- 기쁠 때, 사람들에게 관대해집니다.
22절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이 말은, 그 순간을 위해 그 옷이 준비되고, 잘 간수되어 왔음을 의미합니다. 잘 먹이고 정성스럽게 키웠던 살지 송아지를, 장모님이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 주시듯, 잔치를 위해 따로 준비 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죄인들에게 주심으로써,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주심으로써, 가장 좋은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마음 속에 기쁨이 생기면,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 기쁨의 대상에 모든 생각이 집중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시 온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서, 왕의 위엄 있는 옷을 던져 버리고, 자신의 위신이나 위엄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미갈이 없신여기며, 비웃을 정도로, 여호와 경외에 너무 열중하고, 자신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 아버지 눈에는 오직 아들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은 오직, 그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이 마련되고 움직입니다. 당신을 위해 주님은 섭리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 또한 ‘역동적이고 빠른 움직임’을 통해서 기쁨을 표현합니다.
앞에서 말했던 다윗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언약궤 앞에서 천천히 걸었다거나, 마치 장례식에서 애도하며 따라오는 자처럼, 터벅터벅 걸어서 따라 갔을리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즐거워 한다면, 분명 그의 동작은 크고 가볍습니다.
본문에 보이는 아버지는,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송아지를 잡고 먹자고 머뭇거림이나 천천히 말하지 않고, 쏟아붓듯 말합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 기뻐하는 사람이 침묵하는 법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말’을 통해 표현됩니다. 여러분,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기란 불가능합니다.
24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히브리인들의 시는 댓구나 한 단어의 반복으로 기쁨을 표현합니다.
‘낮아지심’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달려나왔고, ‘사랑’은 아들의 목에 팔을 둘렀고, ‘은혜’는 그의 입에 입 맞추었고, ‘지혜’는 그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혔고, ‘진리’는 아들에게 가락지를 끼웠고, ‘평안’은 그에게 신을 신겼고, ‘지식’은 잔치를 베풀어 주었고, ‘능력’은 그것을 준비했습니다.
‘불변함’은 무엇이 행해졌는지 확증하고, ‘전지하심’은 행해지지 않은 것이 없는지 살피기 위해 주위를 살핍니다.
제 22 과 아버지의 기쁨의 표현
본문 : 누가복음 15:22-24
요절 :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2절)
우리는 하나님께서, 감정을 초월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 관심과 공감도 할 수 없는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우리 본성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격과 품성이 높고 빼어납니다. 그래서 그분의 기쁨의 표현 방식은, 가장 높습니다.
- 기쁠 때, 사람들에게 관대해집니다.
22절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이 말은, 그 순간을 위해 그 옷이 준비되고, 잘 간수되어 왔음을 의미합니다. 잘 먹이고 정성스럽게 키웠던 살지 송아지를, 장모님이 사위에게 씨암탉을 잡아 주시듯, 잔치를 위해 따로 ⎕⎕ㅈㅂ 하였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죄인들에게 주심으로써, 그리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주심으로써, 가장 좋은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으로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 기쁨의 대상에 모든 생각이 ⎕⎕ㅈㅈ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시 온다는 사실에 너무 기뻐서, 왕의 위엄 있는 옷을 던져 버리고, 자신의 위신이나 위엄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미갈이 없신여기며, 비웃을 정도로, 여호와 경외에 너무 열중하고, 자신이 어떻게 보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 아버지 눈에는 오직 아들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집안은 오직, 그 아들을 위해서 모든 것이 마련되고 움직입니다. 당신을 위해 주님은 섭리하시고,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 또한 ‘역동적이고 빠른 움직임’을 통해서 기쁨을 표현합니다.
앞에서 말했던 다윗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다윗이 언약궤 앞에서 천천히 걸었다거나, 마치 장례식에서 애도하며 따라오는 자처럼, 터벅터벅 걸어서 따라 갔을리 없습니다.
본문에 보이는 아버지는,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송아지를 잡고 먹자고 머뭇거림이나 천천히 말하지 않고, 쏟아붓듯 말합니다.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 기뻐하는 사람이 침묵하는 법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ㅁ’을 통해 표현됩니다. 여러분,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입을 다물고 있기란 불가능합니다.
24절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히브리인들의 시는 댓구나 한 단어의 반복으로 기쁨을 표현합니다.
‘낮아지심’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달려나왔고, ‘사랑’은 팔을 둘렀고, ‘은혜’는 입 맞추었고, ‘지혜’는 제일 좋은 옷을 입혔고, ‘진리’는 가락지를 끼웠고, ‘평안’은 신을 신겼고, ‘지식’은 잔치를 베풀었고, ‘능력’은 그것을 준비했습니다.
‘불변함’은 무엇이 행해졌는지 확증하고, ‘전지하심’은 행해지지 않은 것이 없는지 살피기 위해 주위를 살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