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과 가르침의 거부
본문 : 사도행전 2:41-42
요절 :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2절)
- 신약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더 많이 알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 모습과는 정반대로,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리와 신조를 싫어합니다.
- 세상에 도덕과 삶의 수준이 떨어진, 주된 요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의 권위가 상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 권위 상실에 가장 큰 책임은, 바로 교회 자신입니다.
-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지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 부분에서는, 그분을 부인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세리들을 손가락질 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 합니다.
왜 ‘사도의 가르침’보다, 생활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거부되어야 할 마귀의 시각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생활방식의 가르침’ 에는 아무런 권위가 없습니다.
설교시간에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면, 우리 마음 속은 ‘왜 안됩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우리는 좋은대로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말합니다.
고대세계에 이스라엘이 두드러졌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공론이나 상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제시된 대로, 하나님의 법을 가졌고, 그것을 자신들의 고유한 특성으로 여겼습니다.
둘째, 생활방식만으로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어떤 이유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배제하고, 생활방식을 전하는 가르침은 인간의 행동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인간 존재 자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현재에만 관심이 있을 뿐, 영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18-19C 사상가들은, 인간은 멋진 존재인데, 환경이 언제나 인간을 거스른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사회에 의해 타락해 왔기 때문에, 사회만 바꾸면 인간의 고상함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욕구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말합니다.
내 문제는, 내가 가끔 잘못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의 부정하고 악한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영혼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생활 방식에 대한 가르침은, 가치 있는 삶에 어떤 힘도 제공받지 못합니다.
유혹과 죄를 뿌리치는 것이 쉽습니까? 교육은 인간을 곧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어떻게 복음의 메시지가 유일한 소망이 됩니까? 그것은 복음이 우리 죄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 받으셔서, 우리는 용서 받았다고 말합니다.
제 29 과 가르침의 거부
본문 : 사도행전 2:41-42
요절 :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42절)
- 신약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ㅅㄷ들의 가르침을 더 많이 알기 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 모습과는 정반대로, 사도들의 가르침과 교리와 신조를 싫어합니다.
- 세상에 도덕과 삶의 수준이 떨어진, 주된 요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ㅅㄱ의 권위가 상실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 권위 상실에 가장 큰 책임은, 바로 교회 자신입니다.
-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지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 부분에서는, 그분을 부인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세리들을 손가락질 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을 향해 손가락질 합니다.
왜 ‘사도의 가르침’보다, 생활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거부되어야 할 마귀의 시각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생활방식의 가르침’ 에는 아무런 ⎕⎕ㄱㅇ가 없습니다.
설교시간에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면, 우리 마음 속은 ‘왜 안됩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우리는 좋은대로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고 말합니다.
고대세계에 이스라엘이 두드러졌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공론이나 상대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제시된 대로, 하나님의 법을 가졌고, 그것을 자신들의 고유한 특성으로 여겼습니다.
둘째, 생활방식만으로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어떤 ⎕⎕ㅇㅇ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리를 배제하고, 생활방식을 전하는 가르침은 인간의 행동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인간 존재 자체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현재에만 관심이 있을 뿐, 영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18-19C 사상가들은, 인간은 멋진 존재인데, 환경이 언제나 인간을 거스른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사회에 의해 타락해 왔기 때문에, 사회만 바꾸면 인간의 고상함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욕구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에 대한 연구를 말합니다.
내 문제는, 내가 가끔 잘못 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나의 마음의 부정하고 악한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은, 영혼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생활 방식에 대한 가르침은, 가치 있는 삶에 어떤 ⎕ㅎ도 제공받지 못합니다.
유혹과 죄를 뿌리치는 것이 쉽습니까? 교육은 인간을 곧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어떻게 복음의 메시지가 유일한 소망이 됩니까? 그것은 복음이 우리 죄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 받으셔서, 우리는 용서 받았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