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과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본문 : 사도행전 5:29-32
요절 :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32절)
이 사건에 몇가지 신앙 원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불신앙은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막 시작된 당시에도 복음은 오늘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거부당했습니다. 불신앙은 기독교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불신앙의 이유를 지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현대과학에 비추어 볼 때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불신앙과 현대지식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이 없습니다. 신문에 보도되는 끔찍한 사건들은 이런 여러 기술이 개발된 이 후 자행된 일들입니다. 생명, 삶, 정결함, 정직함에 현대 지식은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둘째, 불신앙은 언제나 마음의 문제, 감정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33절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조각조각 잘려 나갔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사도를 죽이고 싶어서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묘사된 사람들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마음에 ‘찔리는 것’과 ‘갈가리 찢기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이 찔리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그것은 마음이 동요되면서 죄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격노하고 사도들을 죽이고 싶었던 것은 양심의 문제에 이유가 있습니다. 양심이 괴로우면 언제난 쉽게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들은 불쾌했습니다. 자존심 역시 불신앙의 일부 원인이 됩니다.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어서 2천년 전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을 자존심 상해 합니다.
세 번째 원리는 복음이 언제나 우리 자신에 대한 진리를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눈멀어 있으며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선지자들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들과 이름난 정치인들과 스승들도 우리를 구원하는데는 전혀 무력했습니다. 세상은 너무도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세상은 아들을 미워했습니다. 주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선언이 됩니다. 여러분은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본성, 새로운 출발이 필요합니다. 그 말은 들은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다음으로 불신앙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무서운 측면은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증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세상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이 가득합니다.
가말리엘의 지적처럼 불신앙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싸우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섭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목사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과 싸우는 것입니다.
제 31 과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본문 : 사도행전 5:29-32
요절 :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32절)
이 사건에 몇가지 신앙 원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불신앙은 전혀 새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막 시작된 당시에도 복음은 오늘날과 똑같은 방식으로 거부당했습니다. 불신앙은 기독교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불신앙의 이유를 ⎕⎕ㅈㅅ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현대과학에 비추어 볼 때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불신앙과 현대지식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이 없습니다. 끔찍한 사건들은 이런 여러 기술이 개발된 이 후 자행된 일들입니다. 생명, 삶, 정결함, 정직함에 현대 지식은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둘째, 불신앙은 언제나 마음의 문제, 감정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33절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조각조각 ⎕⎕ㅈㄹ 나갔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사도를 죽이고 싶어서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마음에 ‘찔리는 것’과 ‘찢기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이 찔리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그것은 마음이 동요되면서 죄를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격노하고 사도들을 죽이고 싶었던 것은 양심의 문제에 이유가 있습니다. 양심이 괴로우면 언제난 쉽게 분노가 일어납니다. 그들은 불쾌했습니다. 자존심 역시 불신앙의 일부 원인이 됩니다.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어서 2천년 전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을 자존심 상해 합니다.
세 번째 원리는 복음이 언제나 우리 ⎕⎕ㅈㅅ에 대한 진리를 말해 준다는 것입니다.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눈멀어 있으며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 자신을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선지자들, 위대한 사상가들, 이름난 정치인들과 스승들도 우리를 구원하는데는 전혀 무력했습니다. 세상은 너무도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세상은 아들을 미워했습니다. 주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선언이 됩니다. 여러분은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본성, 새로운 출발이 필요합니다. 그 말은 들은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다음으로 불신앙은 항상 하나님을 ⎕⎕ㄷㅈ합니다. 무서운 측면은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증오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이렇습니다.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세상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하나님을 향한 적대감이 가득합니다. 가말리엘의 지적처럼 불신앙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싸우게 만든다는 점에서 무섭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목사와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와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과 싸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