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과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본문 : 사도행전 5:34-39

요절 :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39절)

첫째, 먼저 가말리엘의 좋은 점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게다가 가말리엘은 학식까지 뛰어났습니다. “율법교사로” 그는 바울이라는 또 다른 천재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폭력을 싫어했고 법을 준수하는 사람으로 정의와 공명정대함사사로움 없이 정당함을 믿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말리엘은 분명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39절. 하나님을 믿었고 그분을 대적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박한 논쟁은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인정할 만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람은 많이 공부를 할수록 신중하고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다른 산헤드린 공회원들만큼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교훈은 좋은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차이, 즉 교회 다니는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를 확실히 보는 것입니다.

둘째, 가말리엘의 진정한 문제는 그에게 영적인 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에 세상적인 지혜를 잘 결합시킨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탁월성과 재능 때문에 어떤 불신자보다 확신에 넘쳐 있고, 자신의 판단을 주장하며 삽니다. 하지만 가말리엘은 하나님의 역사와 정치적 반란과의 차이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현대인들도 예수를 정치 지도자로 보고, 사회개혁가나 종교적 위인, 위대한 통찰력의 소유자로 봅니다. 그들은 보기에 좋은 합리성을 과시합니다. 이것이 가말리엘의 잘못입니다. 사도들이 보여준 권위와 권세, 능력, 기적을 직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그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 영적 인식이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들과 그 사건들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기에 과거 사례를 토대로 마치 법조인처럼 과거 사건의 판례를 인용하는 것처럼 추론했을 뿐입니다. 시간과 성공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검증방법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진다며 방치하기 쉽고, 인기 있는 수련회, 성경공부교재, 강사등은 성공한 대형교회이기 때문에 검증 없이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 번째 진짜 가말리엘의 문제점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개인적인 도전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관찰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냉정하고 공평하다고 여기며 사도들과 고침 받은 앉은뱅이를 평가했습니다. 가말리엘의 반응은 철저히 머리에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것도 깨닫지도 못했고,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았고, 자신과 사도들들 비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도 책을 읽고, 기독교 TV를 보고, 교회에서 일을 맡고, 예배도 드립니다. 그리고 주일에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에서 자신을 향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제 32 과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본문 : 사도행전 5:34-39

요절 :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39절)

첫째, 먼저 가말리엘의 좋은 점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게다가 가말리엘은 학식까지 뛰어났습니다. “율법교사로” 그는 바울이라는 또 다른 천재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폭력을 싫어했고 법을 준수하는 사람으로 정의와 공명정대함사사로움 없이 정당함을 믿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말리엘은 분명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39절. 오늘날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경박한 논쟁은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인정할 만큼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람은 많이 공부를 할수록 신중하고 겸손해지는 법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다른 산헤드린 공회원들만큼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울 교훈은 좋은 사람과 영적인 사람의 차이, 즉 교회 다니는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를 확실히 보는 것입니다.

둘째, 가말리엘의 진정한 문제는 그에게 ⎕ㅇ적인 인식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에 세상적인 지혜를 잘 결합시킨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탁월성과 재능 때문에 어떤 불신자보다 확신에 넘쳐 있고, 자신의 판단을 주장하며 삽니다. 하지만 가말리엘은 하나님의 역사와 정치적 반란과의 차이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보기에 좋은 합리성을 과시합니다. 이것이 가말리엘의 잘못입니다. 사도들이 보여준 권위와 권세, 능력, 기적을 직시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그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자기에게 영적 인식이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가말리엘은 사도들과 그 사건들을 검증할 방법이 없었기에 과거 사례를 토대로 마치 법조인처럼 과거 사건의 판례를 인용하는 것처럼 추론했을 뿐입니다. 시간과 성공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검증방법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진다며 방치하기 쉽고, 인기 있는 수련회, 성경공부교재, 강사등은 성공한 대형교회이기 때문에 검증 없이 신앙의 표준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 번째 진짜 가말리엘의 문제점은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개인적인 도전을 느끼지 못한 것입니다.

가말리엘은 모든 일을 객관적으로 관찰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냉정하고 공평하다고 여기며 사도들과 고침 받은 앉은뱅이를 평가했습니다. 가말리엘의 반응은 철저히 머리에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어떤 것도 ⎕⎕⎕ㄲㄷㅈ도 못했고,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았고, 자신과 사도들들 비교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도 책을 읽고, 기독교 TV를 보고, 교회에서 일을 맡고, 예배도 드립니다. 그리고 주일에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에서 자신을 향한 말을 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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