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 디모데후서 1:12

요절 :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12절)

‘문제투성이요, 불확실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직 복음만이 이 세상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게 해 줍니다. 바울은 젊은 제자 디모데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하고 좌절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이처럼 말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염세주의자였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리며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기질이나 심리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바울처럼 말할 수 있게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원칙입니다.

여러분의 기질이나 본성, 머리가 나쁘든, 성장과정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복음은 인간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은 인간을 새로 태어나게 하고 옛사람을 새롭게 변화 시킵니다.

  1. 그 당시 인기였던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에 영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 유일한 길은 자신을 엄격히 단련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꿋꿋이 버티고 위축되지 않고 견디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토아는 ‘참는’‘견디는’‘굴복하지 않는’철학처럼 부정적인 반면 바울의 진술은 긍정적입니다. 바울은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바울은 ‘고난이 닥쳐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동역자 디모데야 네게 무슨 일이 생긴거냐 자신에게 미안해 하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라’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것은 스토아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참을 수도 있고,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노래하지는 못합니다.

  1. 스토아 철학에 비교해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이론으로 설명하기보다 한 시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시인은 스패포드입니다.

그는 네 명의 딸을 둔 변호사로 부호였습니다. 어느 해 여름 아내의 건강 회복을 위해 가족 모두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스패포드만 다음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항구에서 가족들을 먼저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데 천청벽력같은 소식을 접합니다. 가족들이 탄 여객선이 다른 배와 충돌하여 네 명의 딸이 모두 익사했고 부인은 겨우 구출되서 프랑스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상가상 스패포드의 전 재산을 맡겼던 은행이 파산하여 하루만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한 스패포드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눈물을 보여선 안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돼, 포기해서는 안돼, 어떻게 잘 될거야, 견뎌야 돼’라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사고 해역을 찾아 딸들을 그리워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해!’ 이 시에 곡을 붙인 찬송가가 있습니다. 찬송가 413장 복음을 믿을 때에만, 한 인간은 역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제 46 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 : 디모데후서 1:12

요절 :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12절)

바울은 젊은 제자 디모데는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낙담하고 좌절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난을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끄러워하지 아니’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이처럼 말할 수 있었을까요? 바울은 염세주의자였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리며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기질이나 심리와 상관없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바울처럼 말할 수 있게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능력이 아닌 ⎕⎕⎕ㅎㄴㄴ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원칙입니다.

복음은 인간을 새로 태어나게 하고 옛사람을 새롭게 변화 시킵니다.

  1. 그 당시 인기였던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에 영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 유일한 길은 자신을 엄격히 단련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꿋꿋이 버티고 위축되지 않고 견디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토아는 ‘참는’‘견디는’‘굴복하지 않는’철학처럼 부정적인 반면 바울의 진술은 긍정적입니다. 바울은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바울은 ‘고난이 닥쳐도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동역자 디모데야 네게 무슨 일이 생긴거냐 자신에게 미안해 하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고 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라’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행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것은 스토아 철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참을 수도 있고,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노래하지는 못합니다.

  1. 스토아 철학에 비교해 기독교는 어떻습니까? 한 시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시인은 ⎕⎕⎕⎕ㅅㅍㅍㄷ입니다.

그는 네 명의 딸을 둔 변호사로 부호였습니다. 어느 해 여름 아내의 건강 회복을 위해 가족 모두 유럽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다음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항구에서 가족들을 먼저 태워 보내고 돌아오는데 천청벽력같은 소식을 접합니다. 가족들이 탄 여객선이 다른 배와 충돌하여 네 명의 딸이 모두 익사했고 부인은 겨우 구출되서 프랑스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상가상 스패포드의 전 재산을 맡겼던 은행이 파산하여 하루만에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한 스패포드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눈물을 보여선 안돼,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돼, 포기해서는 안돼, 어떻게 잘 될거야, 견뎌야 돼’라고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사고 해역을 찾아 딸들을 그리워하며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차이점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해!’ 이 시에 곡을 붙인 찬송가가 있습니다. 찬송가 413장 복음을 믿을 때에만, 한 인간은 역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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