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과 하나님의 부르심
본문 : 사도행전 7:2-3
요절 :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3절)
하나님의 부르심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 우리에게 ‘부르심’ 형식으로 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바로 ‘부르심’입니다. 그 부르심의 무엇보다 정규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설교’입니다. 글을 통해서도 부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어 왔습니다. 질병에 걸려 말씀에 귀 기우리게 하여 부르시기도 하십니다. 건강할 때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다가 그제서야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고 그 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사고를 당한 후 부르심 받기도 합니다.
- 항상 개인적입니다.
복음은 우선적으로 전체적인 메시지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메시지입니다. 개인이 복음으로 변화될 때 그들이 처한 사회 현실에서 상황을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비판하기보다 정부를 비판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비판이 아니라 칭찬 받을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질문하실 것입니다.
- 과거 그릇된 생활방식을 버리라는 부르심입니다.
네 나라를 떠나라, 네 가문을 떠나라, 네 친척을 떠나라 하셨습니다. 나가라, 떠나라, 피하라. 우리는 자기와 관계된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현세에만 초점을 맞출 뿐 거기서 한 치도 넘어서지 못합니다. 돈, 자동차, 집, 쾌락, 자존심을 숭배합니다. 이런 모든 것은 모두 원시적이고 세상적이고 육체적이고 본능적이고 동물적입니다. 아브라함 때 메소포타미아가 그랬고 지금 창원이 그렇습니다.
천로역정의 주인공은 장망성‘장차 망할 시’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와야 산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 세상은 장망성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세상은 죄와 반역으로 심판받습니다. 우리 모두 예외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정죄아래 있는 우리는 ‘떠나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세상 사람들의 삶은 사뭇 다릅니다. 둘 사이에는 공통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철저히 변화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장차 올 세상을 위한 준비일뿐임을 일러 줍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와 행인’ 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유일하지 않고 다만 예비학교일 뿐입니다. 성경은 세상에 점진적인 개선과 향상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복음이 약속한 것은 인간의 지성과 학문과 과학과 지식에 토대를 둔 도성도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자시고 건축가이셔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역사로 세워지는 도성입니다.
우리는 곧 이 지상 도성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여러분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여러분 안에 무슨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 47 과 하나님의 부르심
본문 : 사도행전 7:2-3
요절 :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3절)
하나님의 부르심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 우리에게 ‘⎕⎕⎕ㅂㄹㅅ’ 형식으로 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십니다. 그 부르심의 정규적으로 사용하시는 것이 ‘설교’입니다. 글을 통해서도 부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믿어 왔습니다. 질병에 걸려 말씀에 귀 기우리게 하여 부르시기도 하십니다. 건강할 때는 한 번도 생각하지 않다가 그제서야 살아온 인생을 뒤돌아보고 그 일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또한 사고를 당한 후 부르심 받기도 합니다.
- 항상 ⎕⎕ㄱㅇ적입니다.
복음은 전체적인 메시지가 아닙니다. 개인이 복음으로 변화될 때 그들이 처한 사회 현실에서 상황을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비판하기보다 정부를 비판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비판이 아니라 칭찬 받을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질문하실 것입니다.
- 과거 그릇된 ⎕⎕⎕⎕ㅅㅎㅂㅅ을 버리라는 부르심입니다.
네 나라를 떠나라, 네 가문을 떠나라, 네 친척을 떠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기와 관계된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현세에만 초점을 맞출 뿐 거기서 한 치도 넘어서지 못합니다. 돈, 자동차, 집, 쾌락, 자존심을 숭배합니다. 아브라함 때 메소포타미아가 그랬고 지금 창원이 그렇습니다.
천로역정의 주인공은 장망성‘장차 망할 시’에 살고 있었는데 거기서 나와야 산다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 세상은 장망성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예외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날에는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세상 사람들의 삶은 사뭇 다릅니다. 둘 사이에는 공통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철저히 변화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장차 올 세상을 위한 준비 일뿐임을 일러 줍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와 행인’ 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유일하지 않고 다만 예비학교일 뿐입니다. 성경은 세상에 점진적인 개선과 향상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복음이 약속한 것은 인간의 지성과 학문과 과학과 지식에 토대를 둔 도성도 아니라 하나님이 설계자시고 건축가이셔서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과 역사로 세워지는 도성입니다.
우리는 곧 이 지상 도성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여러분 주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여러분 ⎕ㅇ에 무슨일이 일어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