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과 예상치 못할 방법
본문 : 사도행전 7:17-20
요절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7-18절)
복음이 세상 지혜를 미련하고 전혀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내는 방법은 인간들이 여전히 비참하고 실패에 떨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복음이 하나님의 지혜임을 어떻게 드러냅니까?
첫째,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신비하고 예측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가치와 질서를 뒤바꿔 놓습니다. 지혜 있는 자들을 낮추시고 무지한 사람은 높이십니다. ‘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시고, ‘없는 것들’을 의미 있게 만드십니다. 행 176에서 사람들은 기독교를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도 들어 쓰셔서 자신이 뜻하신 목적을 이루십니다. 이스라엘을 학대한 애굽의 바로를 쓰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심한 학대와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씨앗을 흙으로 덮고록 단단히 밟아 줄 때 ‘많은 열매’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력한 아기로 나셨고 동정녀인 무명의 처녀 어머니와 가난한 하층민으로 나셨고 구유에서 나셨고 목수로 일하셨으며 명문 대학에서 정식 강의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화려한 수도가 아닌 갈릴리 깡촌에서 시간을 보냈고, 많은 무리보다 가난한 사람들 앞에서 전도하셨습니다. 구주는 십자가에 못 박혔고, 너무 약한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방법이 더 지혜롭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애굽에 노예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 스스로가 가나안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높은 지위 덕으로 애굽의 가장 좋은 땅을 받아 번성했으며 그 땅은 너무 살기 좋았습니다. 문제 둘, 바로의 막강한 힘과 권세를 뚫고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안주하고 싶어합니다. 이 세상에서 편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이런 우리의 심리를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흔들어 깨우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바로를 변화시켜서 결국 그들도 나가고 싶어할 뿐 아니라 바로도 그들을 내보내고 싶도록 만드셨습니다.
구약은 전체적으로 세상이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여줍니다. 긴 세월동안 헬라인, 앗수르인, 갈대아인 그리고 로마인에게까지 기회가 돌아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적용,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타이타닉호 승객들처럼 흥에 겨워 추억을 쌓고 행복을 즐기며 재즈를 노래하다가 빙산을 들이받아 배가 조금씩 기울면서 공포가 임하고 그제야 ‘내 주를 가까이’를 찬송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 눈앞의 현실만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고백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계획과 목적을 좌절시키신 일만큼 감사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제 5 과 예상치 못할 방법
본문 : 사도행전 7:17-20
요절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18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17-18절)
복음이 하나님의 지혜임을 어떻게 드러냅니까?
첫째,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신비하고 ⎕⎕ㅇㅊ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가치와 질서를 뒤바꿔 놓습니다. 지혜 있는 자들을 낮추시고 무지한 사람은 높이십니다. ‘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시고, ‘없는 것들’을 의미 있게 만드십니다. 행 176에서 사람들은 기독교를 ‘천하를 ⎕⎕⎕⎕ㅇㅈㄹㄱ 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도 들어 쓰셔서 자신이 뜻하신 목적을 이루십니다. 이스라엘을 학대한 애굽의 바로를 쓰셔서 이스라엘 자손이 심한 학대와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씨앗을 흙으로 덮고록 단단히 밟아 줄 때 ‘많은 열매’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력한 아기로 나셨고 동정녀인 무명의 처녀 어머니와 가난한 하층민으로 나셨고 구유에서 나셨고 목수로 일하셨으며 명문 대학에서 정식 강의를 들은 적도 없습니다.
화려한 수도가 아닌 갈릴리 깡촌에서 시간을 보냈고, 많은 무리보다 가난한 사람들 앞에서 전도하셨습니다. 구주는 십자가에 못 박혔고, 너무 약한 모습으로 죽으셨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방법이 더 지혜롭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애굽에 노예된 이스라엘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 스스로가 가나안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높은 지위 덕으로 애굽의 가장 좋은 땅을 받아 번성했으며 그 땅은 너무 살기 좋았습니다. 문제 둘, 바로의 막강한 힘과 권세를 뚫고 가나안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바로를 변화시켜서 결국 그들도 나가고 싶어할 뿐 아니라 바로도 그들을 내보내고 싶도록 만드셨습니다.
구약은 전체적으로 세상이 스스로 구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여줍니다. 긴 세월동안 헬라인, 앗수르인, 갈대아인 그리고 로마인에게까지 기회가 돌아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적용, 오늘날 사람들은 마치 타이타닉호 승객들처럼 흥에 겨워 추억을 쌓고 행복을 즐기며 재즈를 노래하다가 빙산을 들이받아 배가 조금씩 기울면서 공포가 임하고 그제야 ‘내 주를 가까이’를 찬송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하나님은⎕⎕ㅅㄹ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시적 눈앞의 현실만 봐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고백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계획과 목적을 좌절시키신 일만큼 감사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