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과 찾아오심

본문 : 사도행전 7:29-30

요절 :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절)

30절에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모세에게 알리시고 그것을 시행하도록 그를 보내십니다.

모든 것이 우리 손에 맡겨져 있어서 우리 스스로 구원할 수 있어서 복음을 부인하고 생각과 선행을 통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신학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출발점입니다.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밖에 계신 분, 전 우주 밖에 계신 분임을 얘기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뛰어넘는 분입니다. 그분이 우주를 만드시고 통제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각자 자기 좋은대로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자기의 생각대로 믿으면 된다고 여기며 구지 말씀을 듣고 양심을 따라 순종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염려하시고,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내 삶에 간섭하시고, 우리 삶을 뚫고 들어오신 분이십니다.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싫어하여 떨쳐 버리고 치워버리려 애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대체 왜 40년이나 기다리셨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아는 것은 40년이 우리가 정신 차리는데 유익한 기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왜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자마자 보내지 않으셨을까요?

한가지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한계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인 것같습니다. 인간의 지혜, 머리, 철학, 과학으로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4,000여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둘째, 무력한 노예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습니다. 술취함, 간음, 악의 노예였고, 정욕, 질투, 시기의 노예였고, 악독과 원한과 미움의 노예였습니다. 죄는 우리를 노예로 잡고 있습니다. 교육도, 도덕적 권고도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복음은 우리 힘으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지독한 종살이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구원은 완전히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토록 빛나는 재능과 자질을 자랑했던 모세가 일개 평범한 목자로 전락하여 40년을 지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과 수치 속에서 살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믿음이 사라지고 소망을 잃었습니까? 수년간 기도해도 나아지기는커녕 더해지기만 하고 더 나빠졌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그 한가지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눅 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왕, 군주, 유력자들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할 만한 일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눅 32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입니다. 말씀이 어디에 임합니까? ‘빈들’에 임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가장 예기치 못한 사람에게 홀연히 임합니다.

소망을 잃었을 때, 죄에 굴복했을 때, 부끄러운 죄 속에 있을 때, 40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이 움직이기 시작하셨고 이스라엘에게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려면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제 11 과 찾아오심

본문 : 사도행전 7:29-30

요절 :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절)

30절에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모세에게 알리시고 그것을 시행하도록 그를 보내십니다.

모든 것이 우리 손에 맡겨져 있어서 우리 스스로 구원할 수 있어서 복음을 부인하고 생각과 선행을 통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신학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ㅊㅂ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밖에 계신 분, 전 우주 밖에 계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뛰어넘고 우주를 만드시고 통제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각자 자기 좋은대로, 하나님을 믿어도 자기의 생각대로 믿으면 된다고 여기며 구지 말씀을 듣고 양심을 따라 순종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염려하시고,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내 삶에 간섭하시고, 우리 삶을 뚫고 들어오신 분이십니다.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싫어하여 떨쳐 버리고 치워버리려 애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ㄸ에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대체 왜 40년이나 기다리셨을까요? 40년이 우리가 정신 차리는데 유익한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에덴동산에서 타락하자마자 아들을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을까요? 인간의 ⎕⎕ㅎㄱ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인간의 지혜, 머리, 철학, 과학으로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4,000여년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둘째, 무력한 노예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습니다. 술취함, 간음, 악의 노예였고, 정욕, 질투, 시기의 노예였고, 악독과 원한과 미움의 노예였습니다. ⎕ㅈ는 우리를 노예로 잡고 있습니다. 교육도, 도덕적 권고도 구원해 주지 못합니다. 복음은 지독한 종살이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구원은 완전히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토록 빛나는 재능과 자질을 자랑했던 모세가 일개 평범한 목자로 전락하여 40년을 지냈습니다. 고통과 괴로움과 수치 속에서 살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해 믿음이 사라지고 소망을 잃었습니까? 수년간 기도해도 나아지기는커녕 더해지기만 하고 더 나빠졌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그 한가지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가장 예기치 못한 사람에게 홀연히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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