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과 우리 안에 행하심
본문 : 빌립보서 2:12-13
요절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3절)
본문은 신학적 토대 위에서 실제적인 삶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1장에서 그는 자신의 투옥으로 빌립교인들이 크게 낙심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있어야만 너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갖혀 있다고 만사가 끝난 것처럼 여기지 말라. 전하여 준 것은 내 사상도 내가 발전시킨 이론도 아니다. 너희가 직접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는 점을 명심하고 너희가 그 구원을 완성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12절 “두렵고 떨림으로”.
첫째, 이미 있는 구원을 이루라고 권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일방적으로 주시는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주시기 전까지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구원의 3요소는 칭의, 성화, 영화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 없고 의롭다하심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성화는 우리 안에서의 과정입니다. 성화는 지속적인 반면 칭의는 단회적인 것입니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어서 무죄한 자로 여김 받는 것이고, 성화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 정결해지고 순결해지고 깨끗해지고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구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 지금 구원 받고 있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장차 궁극적으로 구원 받을 것입니다.
성화에서 인간의 역할을 아주 수동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처럼, 성화도 그렇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자신을 맡기고 따라가면 완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의 대답은 ‘이루라’는 능동적인 명령입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구원은 하나님의 역할입니다.
구원의 문제에서 항상 하나님이 모든 주도권을 행사하신다는 것은 논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사람은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마음 자체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능력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주도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선을 행하려는 갈망이나 기도의 갈망이 느껴진다면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시작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3 “자기의 기쁘신 뜻” 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교리가 인내할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 해도 우리의 의지는 약합니다. 에너지도, 힘도, 영적인 동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래도 괜챦은 것은 이 일을 행할 에너지도 주신다고 말합니다.
13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갈망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 51 과 우리 안에 행하심
본문 : 빌립보서 2:12-13
요절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3절)
1장에서 그는 자신의 투옥으로 빌립교인들이 크게 낙심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있어야만 너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내가 갖혀 있다고 만사가 끝난 것처럼 여기지 말라. 전하여 준 것은 내 사상도 내가 발전시킨 이론도 아니다. 너희가 직접 구원을 선물로 받았다는 점을 명심하고 너희가 그 구원을 완성하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12절 “두렵고 떨림으로”.
첫째, 이미 있는 구원을 이루라고 권합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로 일방적으로 주시는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주시기 전까지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구원의 3요소는 ⎕⎕ㅊㅇ, ⎕⎕ㅅㅎ, 영화입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죄 없고 의롭다하심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성화는 우리 안에서의 과정입니다. 성화는 지속적인 반면 칭의는 단회적인 것입니다.
칭의는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어서 무죄한 자로 여김 받는 것이고, 성화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는 것, 정결해지고 순결해지고 깨끗해지고 완전해 지는 것입니다.
성화에서 인간의 역할을 아주 수동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처럼, 성화도 그렇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가만히 자신을 맡기고 따라가면 완전해 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의 대답은 ‘이루라’는 ⎕⎕⎕ㄴㄷㅈ인 명령입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구원은 하나님의 역할입니다.
구원의 문제에서 항상 하나님이 모든 주도권을 행사하십니다.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사람은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납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마음 자체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능력도,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우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주도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선을 행하려는 갈망이나 기도의 갈망이 느껴진다면 다름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지 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교리가 인내할 수 있게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 해도 우리의 의지는 약합니다. 에너지도, 힘도, 영적인 동력도 없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래도 괜챦은 것은 이 일을 행할 에너지도 주신다고 말합니다.
13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갈망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도 주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