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과 두 번째 자격

본문 : 로마서 8:28

요절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8절)

두 번째 자격은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본문에“부르심을 입은 자”는 순서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뒤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본질상으로는, 그 앞에 있게 됩니다.

1) 인간은 속박된 자연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전에 인간은 마귀의 소리에 반응합니다. 자연 상태에는 그렇게, 마귀 명령을 따릅니다. 자연 상태에 인간은 어둠이라는 무지 속에 갇혀 있습니다. 자연 상태 인간은 무기력한 상태입니다. 자연 상태 인간은 유혹에 저항하거나, 부패한 마음과 싸울 힘이 없습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부패한 상태입니다. 인간은 늘 세상 것을 생각합니다. 위에 열거한대로 지금까지 비참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2) 구원의 서정은 예정-소명-칭의-영화의 순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830). 소명은 외적 소명이 있고, 내적 소명이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31항에서는 내적 소명에 대해, 선택은 창세 전에 이미 끝났는데 그 때는 우리가 출생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행위와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부르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외적 소명은 구원을 외면한 자들에게 변명하지 못하는 증거가 됩니다.

외적 소명은 복음을 듣게 하시고, 내적 소명은 마음의 문을 열어 줍니다. 외적 소명은 입술로 고백하게 하고, 내적 소명은 마음으로 영접하게 합니다. 또한 외적 소명은 죄인을 억제하고, 내적 소명은 그를 변화 시킵니다. 인간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사용하시는 수단은, 영적 황홀경이나 신비나, 특별한 계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 자체입니다.

부르실 때, 동일한 방법과 순서대로 하지 않으십니다. 경건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가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빨리 지나지만, 그동안 시계 바늘이 어떻게 언제 움직였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강퍅하고 완고한 죄인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좀 더 엄한 방법을 적용하십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은 ‘죄를 버리라’는 부르심입니다. 거룩하게 되어서, 주님을 위해 따로 구별됩니다. 성도는 성부의 자녀이자, 성자의 지체요, 성령님의 성전이니 거룩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거룩함이 없는 교양은 관을 가득 채운 꽃장식에 불과합니다.

빌 314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했습니다. 부르심이 “위에서”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유효한 부르심은 은혜로운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값없는 은혜여서 가난한 자가 부름 받고, 부자가 버림 받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혜의 부르심입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듣고 춤추는 자가 되지만, 어떤 자는 죽은 자 옆에서 노래하듯, 전혀 듣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성장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들수록 손해되는 것을 포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4) 진리의 빛이 여러 사람들에게 비춰도,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눈이 밝아져 그 빛을 보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빛을 비추어 주셔서 진리의 빛을 보고 받았지만, 그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한번 부르시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죄를 없애실 뿐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유효한 소명이 없으면 하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더럽고 부패한 본성에 머물러 있는 한, 하늘 나라에 합당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회심은 죄에서 은혜로 거듭나는 경험입니다. 죽은 사람이 제 힘으로 살아날 수 없듯이 죄인도 혼자의 힘으로 회심할 수 없습니다.

제 28 과 두 번째 자격

본문 : 로마서 8:28

요절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8절)

두 번째 자격은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본문에“부르심을 입은 자”는 순서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뒤에 위치합니다. 하지만 본질상으로는, 그 앞에 있게 됩니다.

1) 인간은 속박된 자연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전에 인간은 마귀 명령을 따릅니다. 자연 상태에 인간은 어둠이라는 무지 속에 갇혀 있습니다. 자연 상태 인간은 무기력한 상태입니다. 자연 상태 인간은 유혹에 저항하거나, 부패한 마음과 싸울 힘이 없습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부패한 상태입니다. 인간은 늘 세상 것을 생각합니다. 위에 열거한대로 지금까지 비참한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2) 구원의 서정은 예정-소명-칭의-영화의 순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830). 소명은 외적 소명이 있고, 내적 소명이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31항에서는 내적 소명에 대해, 선택은 창세 전에 이미 끝났는데 그 때는 우리가 출생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행위와 자격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부르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외적 소명은 구원을 외면한 자들에게 변명하지 못하는 증거가 됩니다.

외적 소명은 복음을 듣게 하시고, 내적 소명은 마음의 문을 열어 줍니다. 외적 소명은 입술로 고백하게 하고, 내적 소명은 마음으로 영접하게 합니다. 또한 외적 소명은 죄인을 억제하고, 내적 소명은 그를 변화 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사용하시는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사역 자체입니다.

부르실 때, 경건한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가 언제,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시간이 빨리 지나지만, 그동안 시계 바늘이 어떻게 언제 움직였는지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강퍅하고 완고한 죄인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좀 더 엄한 방법을 적용하십니다.

3) 하나님의 부르심은 ‘죄를 버리라’는 부르심입니다. 성도는 성부의 자녀이자, 성자의 지체요, 성령님의 성전이니 거룩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부르심이 “위에서”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유효한 부르심은 은혜로운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값없는 은혜여서 가난한 자가 부름 받고, 부자가 버림 받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은혜의 부르심입니다. 어떤 이는 말씀을 듣고 춤추는 자가 되지만, 어떤 자는 죽은 자 옆에서 노래하듯, 전혀 듣지 못하고 반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붙들수록 손해되는 것을 포기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4) 진리의 빛이 여러 사람들에게 비춰도,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눈이 밝아져 그 빛을 보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한번 부르시면 결코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죄를 없애실 뿐 그의 이름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죽은 사람이 제 힘으로 살아날 수 없듯이 죄인도 혼자의 힘으로 회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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