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과 시작하심부터

본문 : 사도행전 1:1-3

요절 :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1절)

세상은 철학자나 정치가, 또는 세상 다른 어떤 종교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인생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게 하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하늘 아래 오직 복음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긴급한 일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비극은 기독교가 뭐고?, 교회가 뭔지에 대한 혼란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건입니다. 기독교의 놀라운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도행전이 제시하는 설명뿐입니다.

행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출발점이자 근본적인 것은, 기독교는 예수님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기독교는 단순히 도덕 사상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역사적 인물에서 시작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 초대교회에서 설교의 주제였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분의 가르치심에 대한 적용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분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전파하라’시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보면, ‘나를’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교훈이나, 그분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분’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전한 전부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사건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 계시면서 행하신 많은 이적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임을 알리는 것이였습니다.

그 초점은 항상 그리스도 예수께 있었지 기적이나, 사건에 있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를 알고 싶다면, 성경을 덮지 마십시오. 모세의 책들과 선지서와 시편을 읽으십시오. 이것들은 모두 그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십시오. ‘무지’라는 놈이, 이 시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교리를 공부하십시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더 깊은 진리’가 아닌,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근본 진리’입니다. 위대한 신학자, 순교자, 탁월한 설교자는, 성경의 교리를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깨달음과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일 예배를 떼우지 말고, 생명에 말씀을 건성으로 듣지 말고, 귀기우릴 기회를 많이 가지십시오. 이것이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말한, 기독교에 대한 전부입니다.

핵심은 ‘예수께서 시작하신 모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아직 끝내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자신이 시작하신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 개개인을 이 세상에서 구원하시며, 우리를 영광스러운 나라에 들이시고, 다시 오실 그날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제 19 과 시작하심부터

본문 : 사도행전 1:1-3

요절 :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1절)

세상은 철학자나 정치가, 또는 세상 다른 어떤 종교로도 희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결코 사라지지 않는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ㅂㅇ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긴급한 일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교회가 뭔지에 대한 혼란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건입니다. 기독교의 놀라운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도행전이 제시하는 설명뿐입니다.

행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출발점이자 근본적인 것은, 기독교는 ⎕⎕⎕ㅇㅅㄴ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한마디로, 기독교는 단순히 도덕 사상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역사적 인물에서 시작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신약 초대교회에서 설교의 주제였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그분의 가르치심에 대한 적용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아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에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분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가르침을 전파하라’시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씀을 보면, ‘나를’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그분의 교훈이나, 그분의 가르침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분’을 전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전한 전부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사건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 계시면서 행하신 많은 이적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임을 알리는 것이였습니다.

그 초점은 항상 그리스도 예수께 있었지 기적이나, 사건에 있지 않았습니다.

기독교를 알고 싶다면, 성경을 덮지 마십시오. 이것들은 모두 그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경을 공부하십시오. ‘무지’라는 놈이, 이 시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습니다.

교리를 공부하십시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보다 ‘더 깊은 진리’가 아닌,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ㄱㅂ 진리’입니다. 위대한 신학자, 순교자, 탁월한 설교자는, 성경의 교리를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깨달음과 지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일 예배를 떼우지 말고, 생명에 말씀을 건성으로 듣지 말고, 귀기우릴 기회를 많이 가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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