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과 분리된 삶
본문 : 사도행전 2:37-42
요절 :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0절)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행동 때문이며, 그 결과, 사람들은 지성, 감성, 의지의 깊은 변화를 경험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단지 다듬어지거나 수리된 피조물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 곧 믿음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언제나 겉으로 드러납니다.
참된 믿음이 어떻게 드러납니까?
- 진정한 믿음은 큰 분리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사람들을 세상으로부터 분리하여 교회로 옮깁니다.
교회와 국가, 기독교와 세상의 혼합은, 진정한 기독교에 치명적입니다. 교회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교회의 모든 일을 방해합니다.
- 성경에서의 ‘세상’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마음과 전망을 의미합니다.
예수에 대한 그릇된 생각은, 그분이 평화를 주러 이 땅에 오신 ‘평화의 사도’라서, 기독교는 전쟁을 거부하는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그러나 기독교 메시지는 검을 가진 메시지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맡기신 사명은 분리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후 614-16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마 1021-22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구절에서 확증해 주는 것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또한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그들과도 분리시킵니다.
- 그러나 왜 이런 변화가 있어야 합니까?
인류는 죄에서 하나며, 악에서 하나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에서도 하나입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하나님과 반대되는 ‘세상의 마음’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무엇이 세상의 마음을 지배합니까? 자신, 하나님, 죽음, 영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의하면 이 모든 것이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패역한Untoward-보통 좋지 못한 방향으로, 뜻밖의, 별다른’이라는 단어는, 죄에 빠진 인간에 대한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이 말은 비뚤어지고 고집불통이고 통제 불능이라는 뜻입니다. 인간과 세상은, 모두 구부러지고 꼬였습니다. 곧은 것, 순수한 것, 깨끗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세상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악해질 것입니다.
- 우리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 새로운 본성을 얻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어디든지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제 25 과 분리된 삶
본문 : 사도행전 2:37-42
요절 :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0절)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행동 때문이며, 그 결과, 사람들은 지성, 감성, 의지의 깊은 변화를 경험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단지 다듬어지거나 수리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거듭난 자의, 참된 믿음, 곧 믿음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언제나 겉으로 드러납니다.
- 진정한 믿음은 큰 ⎕⎕ㅂㄹ로 이어집니다. 진정한 믿음은, 사람들을 ⎕⎕ㅅㅅ으로부터 분리하여 교회로 옮깁니다.
교회와 국가, 기독교와 세상의 혼합은, 진정한 기독교에 치명적입니다. 교회를 그릇된 길로 인도하고, 교회의 모든 일을 방해합니다.
- 성경에서의 ‘세상’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마음과 전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러 이 땅에 오신 ‘평화의 사도’가 아닙니다. 마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ㄱ을 주러 왔노라”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맡기신 사명은 분리를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후 614-16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또한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그들과도 분리시킵니다.
- 그러나 왜 이런 변화가 있어야 합니까?
인류는 죄에서 하나며, 악에서 하나입니다. 인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에서도 하나입니다. 무엇이 세상의 마음을 지배합니까? 자신, 하나님, 죽음, 영원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은 마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40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패역한Untoward-보통 좋지 못한 방향으로, 뜻밖의, 별다른’이라는 단어는, 비뚤어지고 고집불통이고 통제 불능이라는 뜻입니다. 인간과 세상은, 모두 구부러지고 꼬였습니다. 곧은 것, 순수한 것, 깨끗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세상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어디든지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