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2 과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본문 : 사도행전 4:18-20
요절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20절)
하나님께서 행동하시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지 검증해 보기 바랍니다.
- 이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원리는 복음은 우리를, 완전하게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3년동안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주님과 언제 어디서나 함께 했지만, 오순절 전 복음서에 나타난 이들의 모습은 너무 더디 배웠고 너무 아둔했고, 너무 지각이 없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는 주님을 알아 보지도 못했고, 베드로는 주님께 사탄이라고 꾸지람 들었고, 자기 목숨 잃을까봐, 가장 좋은 친구요, 스승되신 분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랬던 이들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사도들은 진리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진술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담대했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 2. 두 번째 원리는 복음은 우리를 장악합니다.
여러분이 기독교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여러분을 통제하고 삶 전체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순교자와, 목숨 걸고 신앙을 고백한 이의 삶을 보면, 그리스도와 복음이 그들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명령과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신앙이 삶의 주변에서만 맴돌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신앙은 타협하고,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소유자는 복음입니다.
3, 세 번째 원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모든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크게 기뻐했습니다. 복음을 자랑했습니다.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고 훌륭한 철학자라도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① 그들은 왜 사람들에게 말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느꼈습니까? 그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런 부담을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만났다면, 절대 가만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②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부담은 복음 메시지가 자신들에게 일으킨 변화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기적을 행할 능력, 기도할 능력, 말할 능력,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황홀하고 기뻐서 모든 사람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③ 그런데 사도들이 이 모든 일을 계속 말하기를 고집한 데는,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 일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주님은 무지와 죄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베드로와 요한도, 주님처럼 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평생 고생한 신장병을, 어느 작은 약국에서 치료제를 구해서 완쾌되었다면, 같은 병으로 큰 고통 당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서 말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을 ‘육체대로’알았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흑인과 백인, 등 편을 갈라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인간이 마귀와 세상과 육신의 노예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비참과 불행, 온갖 죄의 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크게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의지하는 어떤 것도, 자신들을 돕거나 구원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제 52 과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본문 : 사도행전 4:18-20
요절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20절)
하나님께서 행동하시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여러분은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지 검증해 보기 바랍니다.
- 이 사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첫 번째 원리는 복음은 우리를, 완전하게 ⎕⎕ㅂㅎ시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3년동안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전 복음서에 나타난 이들의 모습은 너무 더디 배웠고 너무 아둔했고, 너무 지각이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께 사탄이라고 꾸지람 들었고, 자기 목숨 잃을까봐, 가장 좋은 친구요, 스승되신 분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랬던 이들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습니다. 사도들은 진리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진술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담대했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 2. 두 번째 원리는 복음은 우리를 장악합니다.
여러분이 기독교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여러분을 통제하고 삶 전체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순교자와, 목숨 걸고 신앙을 고백한 이의 삶을 보면, 그리스도와 복음이 그들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명령과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신앙이 삶의 주변에서만 맴돌고 있다면, 그것은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신앙은 타협하고,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소유자는 ⎕⎕ㅂㅇ입니다.
3, 세 번째 원리는 참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모든 사람들에게 이 메시지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복음을 크게 기뻐했고, 자랑했습니다.
① 그들은 왜 사람들에게 말해야만 한다고 느꼈습니까? 그것은 ‘⎕⎕ㅅㅅ’이기 때문에 그런 부담을 느낀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아들을 직접 만났다면, 절대 가만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② 그들에게 부담은 복음 메시지가 자신들에게 일으킨 ⎕⎕ㅂㅎ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기적을 행할 능력, 기도할 능력, 말할 능력,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③ 사도들은 이 일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주님은 무지와 죄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세리와 창녀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베드로와 요한도, 주님처럼 된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평생 고생한 신장병을, 어느 작은 약국에서 치료제를 구해서 완쾌되었다면, 같은 병으로 큰 고통 당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가서 말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