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과 불신앙의 이유
본문 : 사도행전 5:17-32
요절 :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17절)
17절 말씀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급작스런 죽음 이후, 16절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 사는 아픈 이들이 와서 고침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마음이 시기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요소는 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 ② 두려움이 생기고 나면 복음 메시지를 들을 마음과 받아들이며 순종할 마음까지 생겨납니다. ③ 성령의 능력이 사람들을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반응이 아닌 심오한 변화를 겪게 만듭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지금은 21C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그 말은 부지불식간에 옛날 사람들은 뭘 몰라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 여기서 얻게 되는 진리는 불신앙의 본질과 원인은, 불신앙이 지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과학의 시대임을 특히 더 강조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공정하고 냉정하고 선입견 없이 사심 없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약 위대한 지식인 중에 복음을 믿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만 입증된다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탁월한 지성인들도 복음을 믿습니다.
- 불신앙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17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보다 화나 질투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음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모습은 차분하고 냉정하고 과학적이고 편견 없는 관찰자의 모습이 당연히 아닙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대우할 때 드러나듯 불신앙은 전적으로 감정과 편견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24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의 기적과,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다는 소식도 듣고 그 일이 학문 없는 사람들에 의해 나타났음을 들었습니다. 만약 종교지도자들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면 그 일을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조사를 하고 증인을 찾고 이전 사례들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사건은 그냥 무시했습니다. 분노 섞인 질투와 불쾌감과 분개심만 차서 사도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전면 금지시키려 했습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은 질투와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력인사들로 대중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지식과 백성들이 항상 자신들의 말을 듣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배움 없는 자들이 무대 중앙을 차지해 버린데다가 군중이 그들을 따르며 열심히 듣는 광경까지 보게 되니 화가 치밀어 오른 것입니다.
그들은 배우지 못한 무식자들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반대했습니다. 이것이 불신앙이 보여주는 불합리성이자 무모함입니다.
자신의 불합리성을 보십시오. 회개하십시오.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제 18 과 불신앙의 이유
본문 : 사도행전 5:17-32
요절 :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17절)
17절 말씀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급작스런 죽음 이후, 16절예루살렘과 주변 지역에 사는 아픈 이들이 와서 고침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마음이 시기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요소는 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ㄷㄹㅇ, ② 두려움이 생기고 나면 복음 메시지를 들을 마음과 받아들이며 순종할 마음까지 생겨납니다. ③ 성령의 능력이 사람들을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반응이 아닌 심오한 변화를 겪게 만듭니다.
- 여기서 얻게 되는 진리는 불신앙의 본질과 원인은, 불신앙이 ⎕⎕ㅌㅈ인 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과학의 시대임을 특히 더 강조합니다. 그것이야말로 공정하고 냉정하고 선입견 없이 사심 없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약 위대한 지식인 중에 복음을 믿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만 입증된다면 그들의 주장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탁월한 지성인들도 복음을 믿습니다.
- 불신앙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17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보다 화나 질투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나음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모습은 차분하고 냉정하고 과학적이고 편견 없는 관찰자의 모습이 당연히 아닙니다.
사람들이 주님을 대우할 때 드러나듯 불신앙은 전적으로 ⎕⎕ㄱㅈ과 ⎕⎕ㅍㄱ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24절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의 기적과,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었다는 소식도 듣고 그 일이 학문 없는 사람들에 의해 나타났음을 들었습니다. 만약 종교지도자들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면 그 일을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조사를 하고 증인을 찾고 이전 사례들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사건은 그냥 무시했습니다. 분노 섞인 질투와 불쾌감과 분개심만 차서 사도들의 설교와 가르침을 전면 금지시키려 했습니다.
이 종교 지도자들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 것은 ⎕⎕ㅈㅌ와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력인사들로 대중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지식과 백성들이 항상 자신들의 말을 듣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배움 없는 자들이 무대 중앙을 차지해 버린데다가 군중이 그들을 따르며 열심히 듣는 광경까지 보게 되니 화가 치밀어 오른 것입니다. 자신의 불합리성을 보십시오. 회개하십시오. 자신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믿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