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과 교회의 우선순위

본문 : 사도행전 6:1-2

요절 :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2절)

여기 헬라파는 그리스인이 아니라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히브리파’는 당연히 팔레스타인 출신의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집에 모여 함께 음식을 먹었는데 넉넉한 자들이 어려운 자들을 돕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사도들이 여기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63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집사를 세워 성도를 살피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를 돌보게 하는 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임명한 이유는 스스로 말씀을 제쳐 놓고 봉사하러 다니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선순위를 바로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복음주의’라고 말하는, 영혼에 관심을 갖는 모습의 기독교는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선행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일차적 임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세워 로마와 적군과 싸우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억지로 잡아 임금을 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예수님의 태도는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신’것입니다. 교회의 일차적인 임무는 사람들 앞에 진리를 들어 올리며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딤전 315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주님의 사역은 가르침에 있었습니다. 기적과 치유는 부차적이었습니다.

둘째, 왜 교회는 복음전파를 첫째에 두어야 합니까?

설교를 첫 자리에 두어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에게 전할 사명이 주어졌음을 예루살렘 당국자들에게 명확히 밝혔습니다. 행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이미 살펴보았듯이 베드로는 다시 공회에 잡혀 와서도 또 설교를 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 했습니다.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설교를 첫째에 두어야 할 또다른 이유는 이 메지시만이 우리의 근본적인 필요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복음을 전할 때에만 인간이 겪는 곤경의 근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피상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왜 이런 문제들이 세상에 있는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온통 내 문제, 내 아픔, 내 고통, 내 슬픔, 내 염려만 얘기합니다. 인간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세상과 삶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제 34 과 교회의 우선순위

본문 : 사도행전 6:1-2

요절 :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2절)

그리스도인들은 넉넉한 자들이 어려운 자들을 도와 서로 집에 모여 함께 음식을 먹었는데 돕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헬라파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은 사도들이 여기에 대해 어떻게 행동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63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집사를 세워 성도를 살피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를 돌보게 하는 제도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임명한 이유는 스스로 말씀을 제쳐 놓고 봉사하러 다니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첫째, ⎕⎕⎕⎕ㅇㅅㅅㅇ를 바로 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세상에서 선행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일차적 임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요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유대의 왕으로 세워 로마와 적군과 싸우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억지로 잡아 임금을 삼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예수님의 태도는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신’것입니다. 교회의 일차적인 임무는 사람들 앞에 진리를 들어 올리며 내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딤전 315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주님의 사역은 가르침에 있었습니다. 기적과 치유는 부차적이었습니다.

둘째, 왜 교회는 복음전파를 첫째에 두어야 합니까?

설교를 첫 자리에 두어야 하는 이유는 주님께서 맡기신 ⎕⎕ㅅㅁ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자신들에게 전할 사명이 주어졌음을 예루살렘 당국자들에게 명확히 밝혔습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베드로는 다시 공회에 잡혀 와서도 또 설교를 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 했습니다.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설교를 첫째에 두어야 할 또다른 이유는 이 메지시만이 우리의 근본적인 ⎕⎕ㅍㅇ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이 복음을 전할 때에만 인간이 겪는 곤경의 근원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피상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전에 잠시 멈추어 왜 이런 문제들이 세상에 있는지부터 물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온통 내 문제, 내 아픔, 내 고통, 내 슬픔, 내 염려만 얘기합니다. 인간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세상과 삶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나님을 모르면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습니다.

댓글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