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과 우리의 메시지
본문 : 사도행전 6:2-7
요절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7절)
첫째,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벧후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배운 사람들은 공교한재치있고 교묘하다 이야기를 만드는데 전문가들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아닙니다. 복음은 어떤 모양, 어떤 형태로든 인간적인 것과 거리가 멉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계시’임을 주장합니다. 계시는 탐색, 인간의 추구, 노력, 상상력, 시상의 반대말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열어젖히는 장막입니다. 사람에게 주신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밝혀 주신 진리입니다. ‘계시’라는 말 속에 하나님께서 그 무한한 자비와 인자와 긍휼로 자신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를 기뻐하셨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계시는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 메시지의 내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즉, 그 존재와 그 모든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은혜로운 목적에 관한 비밀의 심연을 명백히 밝혀 주셨습니다. 이것이 계시입니다.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해야 하는데 인간이 오도하지 않고 정확히 이 지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성경의 ‘감동’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완벽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성령의 호흡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중 사명을 받았지만, 명석한 바리새인의 모습으로 말씀을 전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 미련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자신에게는 계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전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둘째, 말씀은 명확히 규정될 수 있고, 명제하나의 논리적 판단 내용과 주장을 언어로 표시하는 것 의 형태로 진술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명확하고 구별되며 정확합니다. 이 도의 명제적 성격이 명백히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거짓 가르침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갈 16-10 이 교리를 부인하는 자와 다르게 설명하는 자는 절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교훈이 스며들고 적그리스도들이 활동하는 것을 본 교회 지도자들은 함께 모여 성령의 영향력과 말씀의 조명 아래 이것이 기독교고 저것이 기독교가 아니라고 규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댓가를 치를 각오로 분명하고 명확하게 처신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 명제들은 교회 전체의 뼈대이자 본질로서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어떤 짓을 해도 끝장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명제들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그 후 수백년동안 그 지혜를 다해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세가지 중요한 신앙고백문을 작성했습니다. 그것이 아타나시우스 신경, 니케아 신경, 사도 신경입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은? 첫 번째 성경에 주어진 계시에 절대 무엇을 덧붙이면 안됩니다. 현대인들이 덧붙일 내용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복음은 완전하고 최종적이고 절대적입니다. 두 번째 사람이 뭐라고 하든지 복음의 어떤 부분도 덜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지성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것을 제거하고 비지성인을 기쁘게 할 욕심으로 ‘복음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너무 똑똑한 나머지 우리 힘으로 사람들을 믿게 만든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세 번째 원리는 인간 생각으로 복음 메시지를 왜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미화하는 사람은 그것을 철학화하는 것이고, 헛되이 만드는 것입니다. 불면증, 아픔, 고통이 있을 때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을 때 예수께 나아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부 해결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가 아니라 심리학일 뿐입니다.
제 35 과 우리의 메시지
본문 : 사도행전 6:2-7
요절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7절)
첫째, 우리는 우리의 메시지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ㄱㅅ’임을 주장합니다. 계시는 탐색, 인간의 추구, 노력, 상상력, 시상의 반대말입니다. 사람에게 주신 분명하고도 명백하게 밝혀 주신 진리입니다. ‘계시’라는 말 속에 하나님께서 그 무한한 자비와 인자와 긍휼로 자신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를 기뻐하셨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계시는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 메시지의 내용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해야 하는데 인간이 오도하지 않고 정확히 이 지식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성경의 ‘⎕⎕ㄱㄷ’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완벽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성령의 호흡을 불어넣으셨습니다.
바울은 명석한 바리새인의 모습으로 말씀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자신에게는 계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고전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둘째, 말씀은 명확히 규정되고, ⎕⎕ㅁㅈ하나의 논리적 판단 내용과 주장을 언어로 표시하는 것 의 형태로 진술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도의 명제적 성격이 명백히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거짓 가르침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입니다. 갈 16-10 이 교리를 부인하는 자와 다르게 설명하는 자는 절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교훈이 스며들고 적그리스도들이 활동하는 것을 본 교회 지도자들은 함께 모여 성령의 영향력과 말씀의 조명 아래 이것이 기독교고 저것이 기독교가 아니라고 규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댓가를 치를 각오로 분명하고 명확하게 처신했습니다.
이 명제들은 교회 전체의 뼈대이자 본질로서 이것이 없으면 교회는 어떤 짓을 해도 끝장날 수 밖에 없습니다. 초대교회는 세가지 중요한 신앙고백문을 작성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 니케아 신경, ⎕⎕ㅅㄷ 신경입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은? 첫 번째 성경에 주어진 계시에 절대 덧붙이면 안됩니다. 복음은 완전하고 최종적이고 절대적입니다. 두 번째 복음의 어떤 부분도 덜어내지 않는 것입니다. 지성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것을 제거하고 비지성인을 기쁘게 할 욕심으로 ‘복음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세 번째 원리는 인간 생각으로 복음 메시지를 왜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미화하는 사람은 그것을 철학화하는 것이고, 헛되이 만드는 것입니다. 불면증, 아픔, 고통이 있을 때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을 때 예수께 나아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전부 해결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복음 전파가 아니라 심리학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