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과 지킨 자의 감사

본문 : 사도행전 7:3-4

요절 :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3절)

모든 사람들을 부르시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영접하거나 믿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4절이 다루는 문제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1. 3절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셨고 4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라고 합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었고, 나갔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구약 모든 신앙 위인들이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고, 하나님을 믿고 부르신 부르심을 따라 살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에 대해 이렇게 길게 다루는 것은 기독교 전체가 아브라함이 부르심 받고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란으로 갔다는 이 진술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당시에 아브라함은 달 신을 숭배하는 이교도였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 별을 보게 하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의 반응입니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현실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알고 있는 현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 상식과, 일반적 지식이 정반대 되는 상황임에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한명도 없었뿐 아니라 이삭이 태어나리라고 약속하셨을 때 그의 나이는 99세 였고 부인은 90살이 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정확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현실과 정반대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들었고 믿었고 붙잡았습니다. 그는 절대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가족을 데리고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즉흥적이거나 기분 감정에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현실은 다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에 위배되는 것같았지만 이 말씀하신 분이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는 불가능은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1. 야고보는 믿기만 하면 이전처럼 살아도 괜챦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약 226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행위로 자신이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단순히 ‘좋습니다. 믿습니다’로 말하며 그대로 메소포타미아에 주저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자신과 자신의 행위와 이해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온전히 의지하고 자신을 드렸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스스로 결심해서 바르게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다가 오히려 처음 믿을 때보다 하나님의 의에서 더 멀어집니다. 우리 스스로 구원할 길이 없었으나 구원의 길을 마련하시고 그것을 값없이 선물로 주신다고 가르칩니다.

제 49 과 가라 하시니

본문 : 사도행전 7:3-4

요절 :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3절)

부르심에 모든 사람이 영접하거나 믿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4절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1. 3절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ㄱㄹ” 하셨고 4절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ㄸㄴ 하란에 거하다가” 라고 합니다.

히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었고, 나갔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뿐 아니라 구약 모든 신앙 위인들이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다고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 받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메소포타미아를 떠나 하란으로 갔다는 진술은 기독교 전체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첫째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당시에 아브라함은 달 신을 숭배하는 이교도였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불러 별을 보게 하실 때 놀랍게도 아브라함의 반응은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과 ⎕⎕⎕ㅈㅂㄷ의 현실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 상식과, 일반적 지식이 정반대 되는 상황임에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삭이 태어나리라고 약속하셨을 때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한명도 없었뿐 아니라 그의 나이는 99세였고 부인은 90살이 넘었습니다.

셋째, 아브라함은 단지 하나님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대로 들었고 믿었고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일어나 가족을 데리고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즉흥적이거나 기분 감정에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성에 위배되는 것같았지만 말씀하신 분이 만물을 창조하신 불가능은 없으신 하나님이심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1. 야고보는 믿기만 하면 이전처럼 살아도 괜챦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약 226 “⎕⎕ㅎㅎ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단순히 ‘좋습니다. 믿습니다’로 말하며 그대로 메소포타미아에 주저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더 이상 자신과 자신의 이해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온전히 의지하고 자신을 드렸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힘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고 스스로 결심해서 바르게 신앙생활 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정력과 시간을 낭비하다가 오히려 처음 믿을 때보다 하나님의 의에서 더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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