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과 두 갈래 길
본문 : 사도행전 7:20-29
요절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5)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태어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세가 경험했던 것처럼 갈림길에 서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23절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바로의 딸에게 건져저 화려한 왕궁 생활을 하게 된 모세는 불현 듯 그 민족을 돌볼 생각이 싹틉니다. 여기서 모세는 기로에 섭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계속 걸을 것인가? 아니면 자기 동족 편에 설 것인가?’복음은 항상 우리를 선택의 기로에 세웁니다.
인류의 시초에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하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지금껏 살아온대로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모두 정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따를 것인가?’ 기로에 섭니다. 엘리야는 왕상 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결단 하지 않는 것은 중간 같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살겠다는 고집입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영광과 세상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이 선택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모세는 유망한 장래를 내려놓고 모든 것을 버리고 비천한 처지에 있던 이스라엘 자손과 동일시 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1, 자신이 누구인가를 자각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그것이 부귀영화보다 더 귀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사는 동안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잘못된 견해로 양육 되었습니다. 돈이 최고고, 자기를 위해 즐기며, 성적 일탈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배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누구고,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고, 여러분의 운명이 무엇인지 인식했습니까?
- 의와 공의에 대한 자각입니다.
어느날 애굽인이 자기 형제에게 학대하는 것을 보고 공의로 행동했습니다. 다음 날 동족 두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한쪽이 불의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어제와 같은 원칙으로 행동했습니다. 모세의 결단은 진리와 의에 대한 자각으로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사람이 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까? 거룩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본질적으로 의롭고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하나님 율법에 저항하여 무산시키려 합니다. 그 이유는 아무 제약, 한계, 구속, 법도 없이 생활하고 싶은 것입니다.
- 멀리 내다 본 것입니다
모세는 현실의 좁은 한계에 갇히지 않고, 현실의 벽을 뚫고 저 끝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은 겉모습과 눈앞의 현실 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세상 낙은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세상 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잠시뿐입니다. 현실에 갇히지 말고, 눈을 들어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인생을 그리스도 안에 드릴 때 평안을 맛보게 되고 순수하고 정결하고 거룩하고 만족스러운 삶,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하려고 결단할 때 여러분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모든 신앙 선진들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
제 7 과 두 갈래 길
본문 : 사도행전 7:20-29
요절 :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5)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죄인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세가 경험했던 것처럼 갈림길에 서서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이 있습니다.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23절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화려한 왕궁 생활을 하게 된 모세는 불현 듯 그 민족을 돌볼 생각이 싹틉니다. 여기서 모세는 기로에 섭니다.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계속 걸을 것인가? 아니면 자기 동족 편에 설 것인가?’복음은 항상 우리를 선택의 기로에 세웁니다.
인류의 시초에 에덴동산에서도 아담과 하와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지금껏 살아온대로 계속 살 것인가 아니면 모두 정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따를 것인가?’ 기로에 섭니다. 엘리야는 왕상 1821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결단 하지 않는 것은 중간 같지만 하나님을 등지고 살겠다는 고집입니다. 내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자신의 영광과 인간의 영광과 세상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인가 이 선택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 ⎕⎕ㅈㅅ이 누구인가를 자각했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부귀영화보다 더 귀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잘못된 견해로 양육 되었습니다. 돈이 최고고, 자기를 위해 즐기며, 성적 일탈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배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누구고,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고, 여러분의 운명이 무엇인지 인식했습니까?
- 의와 공의에 대한 자각입니다.
어느날 애굽인이 자기 형제에게 학대하는 것을 보고 , 다음 날 동족 두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진리와 의에 대한 기준으로 행동했니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본질적으로 의롭고 진실한 삶을 삽니다. 세상은 하나님 율법에 저항하여 아무 제약, 한계, 구속, 법도 없이 생활하고 싶어합니다.
- ⎕⎕ㅁㄹ 내다 본 것입니다
모세는 현실의 좁은 한계에 갇히지 않고, 현실의 벽을 뚫고 저 끝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은 겉모습과 눈앞의 현실 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세상 낙은 아침 안개와 같습니다. 세상 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잠시뿐입니다. 현실에 갇히지 말고, 눈을 들어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속하려고 결단할 때 여러분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모든 신앙 선진들에게 속해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