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과 자랑할 것 없는 삶

본문 : 갈라디아서 6:14

요절 :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절)

첫째, 십자가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삶이 매우 심각하고 엄숙하고 진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인생이라는 것이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천박하고 가벼운 것이 아닌데 그 이유는 심은 그것을 거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을 위해 심을 수 있고, 영생을 거둘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은 십자가와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십자가가 인기가 없는 것은 교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십자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얻도록 가르쳐 주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 메시지의 중심과 핵심이 아닙니다.

마 1621-23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후 주님은 즉각 자기가 죽으실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가르치심 속에 십자가가 명백하고 분명하고 단순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차적으로 선포하고 전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이나 그의 모범이 아니라 그의 죽으심입니다.

둘째, 그렇다면 사도는 왜 이것을 자랑합니까?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이 십자가로 말미암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갈 614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울이 십자가를 전한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케 하고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죽으심은 후회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추어야 할 일도 아닙니다. 십자가를 숨기지 말고, 철학적으로 포장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사도는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한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자신을 구원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할 어떤 일을 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이 그 십자가 위에서 일어났음을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십자가 사건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합니까?

구원은 죄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목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저와 여러분과 모든 인류가 죄 아래 있고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거룩하고 공의로우시나 우리는 추하고 미련하고 비열하고 죄악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피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못 본척 하실 수 없고 죄를 심판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둘이 화목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피흘림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옮겼고, 그 아들은 우리의 죄책과 허물에 대한 형벌을 하나님께 지불하셨습니다.

제 26 과 자랑할 것 없는 삶

본문 : 갈라디아서 6:14

요절 :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14절)

첫째, 십자가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ㅈㅎㅇ 합니다

이 세상 삶이 매우 심각하고 엄숙하고 진지한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심은 그것을 거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성령을 위해 심을 수 있고, 영생을 거둘 수 있습니까? 그 해답은 십자가와 그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십자가가 인기가 없는 것은 교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십자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ㅅ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얻도록 가르쳐 주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기독교 메시지의 중심과 핵심이 아닙니다.

마 1621-23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한 후 주님은 즉각 자기가 죽으실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님의 가르치심 속에 십자가가 명백하고 분명하고 단순하게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일차적으로 선포하고 전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이나 그의 모범이 아니라 그의 죽으심입니다.

둘째, 그렇다면 사도는 왜 이것을 자랑합니까?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이 십자가로 말미암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갈 614 “…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울이 십자가를 전한 까닭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케 하고 ⎕⎕ㄱㅇ을 가져다 주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주님의 죽으심은 후회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추어야 할 일도 아닙니다. 십자가를 숨기지 말고, 철학적으로 포장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자신을 구원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를 구원할 어떤 일을 하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이 그 십자가 위에서 일어났음을 말합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십자가 사건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합니까?

구원은 죄용서 받고 하나님과 화목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저와 여러분과 모든 인류가 죄 아래 있고 하나님의 정죄 아래 있기 때문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거룩하고 공의로우시나 우리는 추하고 미련하고 비열하고 죄악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의 피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못 본척 하실 수 없고 죄를 심판하셔야 합니다. 어떻게 둘이 화목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ㅍㅎㄹ 없이는 죄사함이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옮겼고, 그 아들은 우리의 죄책과 허물에 대한 형벌을 하나님께 지불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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