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과 서로 관용하라
본문 : 빌립보서 4:4-5
요절 :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5절)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관용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진정 기뻐할 수 없습니다. ‘기뻐하는 것’은 나를 표출하여 하나님을 노래하는 능동적인 일이지만 ‘관용’을 보이는 것은 나를 억제하는 수동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바울이 말하는 ‘관용’의 소극적 의미
동물적으로 타고난 좋은 본성이나 매사 유약하고 안이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1절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에서 알 수 있습니다. 관용을 베푸는 자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굳게 서는 자입니다. 타협하지 않습니다. ‘관용’이란 ‘절대 평화주의’를 추구하면서 모든 것을 내어주고 양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 적극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 ‘관용’에는 ‘자신과 자신의 심령을 통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관용은 자제력과 극기의 모습이고 자신의 심령과 행동을 다스리는 모습입니다. 내 몫을 최후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교회와 다른 이들을 위해 무엇보다 주님을 위해 내가 당연히 받을 것까지 양보하는 것입니다.
㉡ 또,‘관용’은 쉽게 속상해 하지 않는 상태, 즉 너그러운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는 다 교회의 지체이므로 자기 심령과 마음을 잘 다스려서 쉽게 불쾌함을 드러내거나 속상함을 드러내지 말아야 합니다. 관용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에게 있어서 어떤 공격도 잘 소화해 내며 그로 인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을 변명해 주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부족을 남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의 연약함을 비꼬지 마십시오. 그가 모자르고 어린 신앙과 인격이라면 불쌍히 여겨 사랑으로 은혜로운 성품과 말로 잘 가르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심지어 기쁠 때에도 격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너무 좋으면 자제심을 잃습니다. 아무리 슬프고 비통해도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관용을 나타내도록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십시오.
- 우리는 누구에게, 관용해야 합니까?
나와 뜻이 맞는 사람,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관용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관용을 나타내는 것이야말고 복음의 능력과 은혜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어떻게 관용의 상태가 되도록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님이 곧 오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은 이주민과 순례자에 불과하고 오늘 있다가 내일 떠날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관용을 베풀 준비가 거의 끝난 것입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라는 말씀은 그분이 심판자라는 말씀입니다. 심판자는 내가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도 심판 받습니다. 남을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제 37 과 서로 관용하라
본문 : 빌립보서 4:4-5
요절 :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5절)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인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관용 없이 그리스도인으로 진정 기뻐할 수 없습니다.
- 바울이 말하는 ‘관용’의 소극적 의미
동물적으로 타고난 좋은 본성이나 매사 유약하고 안이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1절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에서 알 수 있습니다. 관용을 베푸는 자는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굳게 서는 자입니다. 타협하지 않습니다. ‘관용’이란 모든 것을 내어주고 양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 적극적인 의미는 무엇입니까?
㉠ ‘관용’에는 ‘자신과 자신의 심령을 통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관용은 자제력과 극기의 모습이고 자신의 심령과 행동을 다스리는 모습입니다. 내 몫을 최후까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교회와 다른 이들을 위해 무엇보다 주님을 위해 내가 당연히 받을 것까지 ⎕⎕ㅇㅂ하는 것입니다.
㉡ 또,‘관용’은 쉽게 속상해 하지 않는 상태, 즉 너그러운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는 다 교회의 지체이므로 자기 심령과 마음을 잘 다스려서 쉽게 불쾌함을 드러내거나 속상함을 ⎕⎕⎕⎕ㄷㄹㄴㅈ 말아야 합니다. 관용이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에게 있어서 어떤 공격도 잘 소화해 내며 그로 인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남을 ⎕⎕ㅂㄹ하는 것입니다.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행동을 변명해 주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부족을 남에게 말하지 마십시오. 그의 연약함을 비꼬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인은 기쁠 때에도 격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너무 좋으면 자제심을 잃습니다. 아무리 슬프고 비통해도 격하게 반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우리는 누구에게, 관용해야 합니까?
나와 뜻이 맞는 사람, 나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모든 분야와 영역에서 관용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문제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관용을 나타내는 것이야말고 복음의 능력과 은혜를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어떻게 관용의 상태가 되도록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주님이 곧 오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은 이주민과 순례자에 불과하고 오늘 있다가 내일 떠날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심판자라는 말씀입니다. 심판자는 내가 아닙니다. 우리도 남을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