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과 두가지 정신

본문 : 빌립보서 4:8

요절 :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5)

사도 바울이 8절에서 말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두가지 이견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 정신과 그리스 정신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히브리 정신은 항상 역동적인 성향을 보이는 반면, 그리스 정신은 추상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히브리 정신의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하나님의 행동과 개입을 강조하는 반면, 그리스 정신은 모든 것이 사상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구원이 깊은 사고를 통해 완성되고 사상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히브리인들은 감정적이고 열정적인데 반해 그리스인들은 감성적이고 조절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300-400년 경 그리스 철학과 싸워야 했습니다. 교회는 예언을 강조하는 역동적인 복음을 하나의 철학으로 바꾸려는 사상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16세기에 교회개혁과 르네상스가 부딪히며 표출되었습니다. 학문의 부흥과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면서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17세기에 들어 청교도와 국교도의 갈등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청교도의 예배관은 감정과 성령의 임재 앞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강조한 반면, 국교도의 예배관은 형식과 의식, 전례, 아름다운 언어와 화려한 건물, 진선미에 대한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18세기 복음 각성운동으로 부흥과 회심이 강조되는 히브리 사상이 주도권을 잡았다가 19세기에 고전, 학문, 지식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그리스 사상이 퍼져 가면서 성경에 지대한 타격을 입힙니다. 이제 회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사상만 받아들이면 구원 받는다’는 교묘한 말을 퍼뜨립니다.

  1. 본문에 “…무슨 덕이 있든지…” 라는 말은 그 시대 그리스 사상가들이 쓰던 말이었습니다. 도덕적 권면을 하는 것이 그리스 철학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은 사람은 ‘좋은 말씀이야’하면서 더 이상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도가 절대 피하려는 태도가 바로 이 감상적인 태도입니다.

정서적이고 열정적인 것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괜챦습니다. 그러나 감상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감상은 기독교의 본질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정신수양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이 호소하는 바가 아름다운 생각, 시, 좋은 문학, 음악으로 마음으로 채우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1. 성경은 절대 사상을 숙고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두려워하듯 십자가 교리가 일개 철학으로 뒤바뀌는 일이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성경의 관심은 사실과 구체적인 인물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아야 합니다.

제 38 과 두가지 정신

본문 : 빌립보서 4:8

요절 :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 105)

사도 바울이 8절에서 말하는 주제에 대해서는 두가지 이견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 정신과 그리스 정신의 차이에서 비롯된 문제입니다.

히브리 정신은 항상 역동적인 성향을 보이는 반면, 그리스 정신은 추상적인 성향을 보였습니다. ⎕⎕⎕ㅎㅂㄹ 정신의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하나님의 행동과 개입을 강조하는 반면, ⎕⎕⎕ㄱㄹㅅ 정신은 모든 것이 사상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구원이 깊은 사고를 통해 완성되고 사상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히브리인들은 감정적이고 열정적인데 반해 그리스인들은 감성적이고 조절을 중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300-400년 경 그리스 철학과 싸워야 했습니다. 교회는 예언을 강조하는 역동적인 복음을 하나의 철학으로 바꾸려는 사상과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16세기에 교회개혁과 르네상스가 부딪히며 표출되었습니다. 학문의 부흥과 신앙의 부흥이 일어나면서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17세기에 들어 청교도와 국교도의 갈등으로 표출되었습니다.

청교도의 예배관은 감정과 성령의 임재 앞에 하나님의 행하심을 강조한 반면, 국교도의 예배관은 형식과 의식, 전례, 아름다운 언어와 화려한 건물, 진선미에 대한 개념을 강조했습니다.

18세기 복음 각성운동으로 부흥과 회심이 강조되는 히브리 사상이 주도권을 잡았다가 19세기에 고전, 학문, 지식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그리스 사상이 퍼져 가면서 성경에 지대한 타격을 입힙니다. 이제 회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사상만 받아들이면 구원 받는다’는 교묘한 말을 퍼뜨립니다.

  1. 본문에 “…무슨 덕이 있든지…” 라는 말은 그 시대 그리스 사상가들이 쓰던 말이었습니다. 도덕적 권면을 하는 것이 그리스 철학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읽은 사람은 ‘좋은 말씀이야’하면서 더 이상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사도가 절대 피하려는 태도가 바로 이 ⎕⎕⎕ㄱㅅㅈ인 태도입니다.

정서적이고 열정적인 것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괜챦습니다. 그러나 감상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감상은 기독교의 본질과 아무 상관 없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정신수양적’으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복음이 호소하는 바가 아름다운 생각, 시, 좋은 문학, 음악으로 마음으로 채우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1. 성경은 절대 사상을 숙고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ㄱㄹㅅㄷ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두려워하듯 십자가 교리가 일개 철학으로 뒤바뀌는 일이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성경의 관심은 사실과 구체적인 인물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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