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과 온전하지 못한 삶
본문 : 빌립보서 3:12-14
요절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2절)
- 바울이 10-14절에서 말하는 바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12절은 그리스도가 자기를 붙잡으셨고 지금도 붙잡고 계신 것은 특별한 목표에 도달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갑자기 붙잡으셨습니다. 단순히 교회를 더 이상 핍박하지 못하게 하시려 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닮게 하기 위해서고,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말한 목표는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와 온전히 교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리스도처럼 죽는 것, 범사에 그와 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런데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장래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믿음만 붙잡고 있습니다.
셋째, 이처럼 자신을 붙잡고 있는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는 것입니다. 13-14“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달려가노라”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추측해 본다면 이 땅에서 우리를 낮추어 자랑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고 죄가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두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도의 기준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교통하고 교제함으로써 그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온전케 되는 일과 완전한 성화는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느 한순간에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사도는 14절 “달려가노라” 말합니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요소는 없습니다. 온전함에 이르는 사도의 방법은 ‘달려가’는 것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한 단계씩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일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에는 우리도 가만히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은혜가 주어져서 저절로 되어진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의와 칭의의 영역에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새 생명을 얻은 후에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단계는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권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이 구원의 확신을 빼앗기는커녕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확신의 토대가 됩니다.
제 49 과 온전하지 못한 삶
본문 : 빌립보서 3:12-14
요절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2절)
- 바울이 10-14절에서 말하는 바는 세가지입니다.
첫째, 12절은 그리스도가 자기를 붙잡으셨고 지금도 붙잡고 계신 것은 특별한 목표에 도달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갑자기 ⎕⎕ㅂㅈ으셨습니다. 단순히 교회를 더 이상 핍박하지 못하게 하시려 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닮게 하기 위해서고,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고, 그의 죽으심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이 말한 목표는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와 온전히 교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리스도처럼 죽는 것, 범사에 그와 같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그런데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장래에도 그리스도 안에 있을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믿음만 붙잡고 있습니다.
셋째, 이처럼 자신을 붙잡고 있는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는 것입니다. 13-14“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달려가노라”
-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추측해 본다면 이 땅에서 우리를 낮추어 자랑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고 죄가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두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도의 기준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교통하고 교제함으로써 그를 ⎕⎕ㅇㄴ 것이었습니다.
온전케 되는 일과 완전한 성화는 ⎕⎕⎕ㄱㅈㄱ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느 한순간에 온전해질 수 없습니다.
사도는 14절 “달려가노라” 말합니다. 여기에 갑작스러운 요소는 없습니다. 온전함에 이르는 사도의 방법은 ‘달려가’는 것입니다. 한걸음 한걸음 한 단계씩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일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에는 우리도 가만히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은혜가 주어져서 저절로 되어진다는 환상을 버려야 합니다.
의와 칭의의 영역에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구원받고 새 생명을 얻은 후에 성화를 이루어 나가는 단계는 가만히 있으면 안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권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것이 구원의 확신을 빼앗기는커녕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확신의 토대가 됩니다.